▲ 최충식 논설실장 |
공자의 초상화, 동상, 즉석식 복권에는 간달프처럼 긴 수염을 붙이고 있다. 지혜와 경륜의 기호로 넣기 시작한 '패션수염'이 진짜 수염 없는 공자를 밀어낸 셈이다. 두 성인의 만남과 에피소드를 그린 옛 벽화에도 수염이 없다.
수염 없는 노자가 수염 없는 공자에게 말한다.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이고 뭐고 없는 듯 행동하고 덕성 갖춘 인간은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법이지. 그대 몸에 지닌 그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 다 버리시오.” 연상의 노자는 또 이렇게 훈계조였다. “언행을 삼가고 자기주장을 함부로 내세워선 안 되오.” 공자는 돌아와 말똥말똥한 제자들에게 털어놓는다. “질주하는 놈은 그물로, 헤엄치는 놈은 낚시로, 나는 놈은 활로 잡지. 용은 방법이 없어. 오늘 본 노자는 정말 용이더라.”
성현이라도, 어쩌면 성현이기에 사물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 소인배와 여자는 나 몰라라 하고 군자에게 적용하는 공자의 '서(恕)'를 장자도 우화적으로 비튼다. “새한테 술 먹이고 음악 연주해줘봐. 사흘 만에 죽지.” 장자는 새 기르는 방법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새 기르기'를 의심했다. 또 “육계나무는 식용이라 베이고, 옻나무는 칠에 쓰여 껍질이 벗겨진다. 모두들 유용의 쓰임만 알지 무용의 쓰임은 모르고”라며 유가를 꼬집는다. 유능한 사람은 육계·옻나무 신세를 못 면하며 별 볼일 없는 상수리나무가 도끼날을 피해 살아남는다. 쓸모없음의 큰 쓰임새를 강조한 것이다.
매사가 그렇거니와 돈도 잘 먹고(벌고) 잘 써야 한다. 공자가 관학 선생 할 때 연봉은 좁쌀 2000석 정도였다. 280명의 1년분 양식이다. 맹자가 받은 연봉은 공자의 100~150배를 능가했다. 그걸 얼마나 잘 썼는지는 모른다. 성리학자 정이는 “군자는 물질을 부리고 소인은 물질의 노예가 된다”고 경계한다. 거기에서 하나의 해답, 하나의 목표, 하나의 원인을 찾는 데서 탈이 난다. 돈뿐이겠는가.
힘세면 장땡인 전국시대나 현대의 정치에서나 적용되는 것이 공자가 강조한 경제력(食), 군사력(兵), 백성의 신뢰(民信)다. 특히 '민신'이다. 신뢰는 온 동네 도랑을 꾸정꺼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로도 추락한다.
수놈 미꾸라지의 도주력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다. 빗줄기 타고 허공 3미터까지 치솟는 건 예사다. 진상 짓을 하다 부랴부랴 귀국한 고위 공직자의 추한 얼굴에서 수염 달린 미꾸라지를 본다면 좀 과한 상상력인가. 성 스캔들 하나로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대동한 방미 성과까지 가려져 안타깝다. 윤 전 대변인은 글농사 동업자로 필자처럼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 논설실장까지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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