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 특별기획, '남다르게 키웠다-신맹모지교'는 대전·충남에서 소문난 '엄친아들, 엄친딸'의 부모로부터, '남다른' 교육비법을 들어보기 위해 기획했다.
부모들을 직접 만나며 느낀 공통점 중 하나는 자녀의 '공부' 못지 않게 '인성'에도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 외국으로, 서울로 유학을 떠나 아이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꾸준히 좋은 글과 고사성어를 챙겨주고, 책도 좋지만 뛰어놀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도록 했다는 부모도 있었다.
하버드대 대학원 최순원씨의 부모 최민호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과 전광희씨도 매년 설날이면 자녀들에게 세뱃돈과 함께 세뱃글을 주었다고 한다. 새해 첫날, 아버지의 정이 듬뿍 담긴 칭찬과 격려의 글을 읽은 아이들이 '밝고 바르게' 자라는 것은 봄볕 속에 신록이 우거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아이에 대한 '존중'과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딸이 중3,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날. 졸업선물을 고민하다 온가족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정장차림을 하도록 시키고 아내와 나도 정장차림으로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는 분위기가 아주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미리 레스토랑의 지배인에게 말했다.
“우리가 도착하면 미안하지만, 현관에 나와 직원들을 도열해서 우리를 맞아줄 수 없겠소?” 상황을 설명했더니 흔쾌히 그리 해주기로 했다.
예약된 시간에 도착하자 과연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현관에 나와 정중히 맞아주었다. 예약된 좌석으로 아이들과 우리를 대통령 모시듯 안내해주었다. 별도로 준비된 호젓한 테이블에는 촛불과 케이크가 미리 준비돼있었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하며 놀랐다.
“너희들의 졸업식 날. 오늘의 주빈은 너희들이다. 레스토랑 직원들과 엄마 아빠가 너희를 최상의 손님으로 맞아 귀빈으로 대접하기로 했다. 졸업 축하한다.”
아이들을 가운데 주빈석에 앉히고 메뉴판을 보여주도록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잘 모른다. 웨이터가 친절히 존댓말로 설명해주자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다가 점점 표정이 의젓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어른으로서 대접을 받자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당시의 졸업기념 만찬을 생애 받아본 최고의 선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그들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민호 전 청장의 책 '최민호의 희망이야기'중에서
잊지 못할 '졸업기념 만찬 선물'을 받은 두 아이 중 딸 서경 양은 자라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아들 순원 군은 한국을 대표하는 '물리영재'가 됐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하버드대 대학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최서경(30)·순원(27)씨의 부모 최민호 전 행복도시건설청장(57·현 공주대 행정학과 객원교수)과 전광희(56)씨 부부를 만나봤다.
-'졸업기념 만찬' 이야기를 읽으면서 '존중받고 자란 아이가 존중할 줄 안다'는 옛말을 떠올려봤습니다만 아이를 '존중'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그 사랑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이들은 왜 몰라줄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보다도 '존중'입니다. 부모들은 “너를 위해서 혼낸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부를 잘하고 싶지, 못하고 싶은 아이는 없을겁니다. 부모보다 아이 본인이 더 힘든거죠.'존중'과 '경청'으로 귀 기울여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소 교육원칙이 있다면 이 기회에 설명을 해주시죠.
“자식자랑 하는 것 아니라고 하는데(웃음) 남다른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평소 마음에 새겨온 네가지를 꼽는다면 첫째 아이들을 존중하자, 둘째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선생님을 존중하자, 넷째 학교교육 10년은 지식교육이 아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중시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요?
“일본 유학시절 중학교 여교사의 이야기가 계기가 됐습니다. 그 여교사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 똑같다고 합니다. 늘 아이 생각을 하느라 머리 속 80%는 '아이'가 차지한다는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천차만별, 다 다르다고 합니다. 어머니보다 더 자상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평범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심지어 폭행을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정교육에서 어머니가 '상수'라면 아버지는 '변수'이기에 자녀교육은 아버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딸이 초등 2학년, 아들이 유치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녀교육은 아이 엄마에게 맡겼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지의 역할에 더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셋째 '선생님을 존중하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은 가정방문이 사라지고 없지만 어릴 적 가정방문 때 선생님이 오시면 아버지께서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하셨습니다. 선생님께 쩔쩔 매는 부모님을 보며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평소에 하시던 말씀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가정환경이라면 몰라도 가정교육은 성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눈이 멀기 때문에 자식을 이길 수 있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는거죠. 그래서 자식을 학교로 보내는 것이고 선생님은 부모가 못가르치는 자식을 혼을 내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엄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선생님을 부모가 우습게 대한다면, 그것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내 아이를 야단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교권과 권위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새기며 아이들 선생님께 최상의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넷째, 학교교육 10년은 지식교육이 아니라는 말씀은 어떤 뜻인가요?
“어렸을 때 10년(초등 6년+중 3+고3)을 교육받는 것은 지식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될 일, 하기 싫지만 해야할 일을 배우는게 10년 교육 '훈육'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 인내심과 절제, 의무, 도덕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성인이 됐을 때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기죽는다”며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는 인내심과 절제를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날 자녀들에게 '세뱃글'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는 해, 아이들에게 설날 세뱃글을 써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설날 읽어볼 첫 글이니 아이들에게 격려와 칭찬으로 시작하는 덕담을 적어주면서 새해에 조심하거나 고쳐나갈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저는 매년 새해 전날, 까치설날이면 세뱃글을 쓰기 바빴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들은 매년 제가 써준 세뱃글을 모아서 간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는 저희 부부에게 세배 뒤에 봉투를 건넸는데 그 안에는 새해를 맞은 축복과 감사의 글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아내의 눈자위가 촉촉하게 붉어졌습니다. 세뱃글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열면서 저희 가족은 서로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축복의 신기원을 여는 셈입니다. 그래서 매년 새해 첫날 이른 새벽, 저희 가족은 세뱃글로 한해를 엽니다.”
●최순원씨는?
1987년생. 대전이 낳은 수재다. 삼천초와 삼천중을 졸업했고, 중학교 때는 전교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대전과학고를 수석입학, 수석졸업했고, 과학고에 재학중이던 2004년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 한국대표로 출전, 금상(한국 대표 중 1등)을 수상했다. 금상 수상으로 대전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17살의 나이에 '대전을 빛낸 자랑스런 대전인상'을 수상했다. 미국 명문대학으로 물리학 이론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졸업식에서 칼텍 최고의 상인 '파인만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하버드대 대학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 양자컴퓨팅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아들 순원씨의 진로를 묻는 질문에 최 전 청장은 “대전에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되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정리=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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