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헌 정치사회부장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요란하다. 새 정부 출범하자마자 벌어지는 일이라 심상치 않다. 내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둬서인지 정치권과 지역의 반응은 더 '뜨겁다.' 이명박 정권 초가 연상된다. 당시엔 '세종시 수정론'이 정국을 달궜다. 여당 입장에서는 이번 과학벨트 논란을 세종시 수정론과 결부짓는 것을 가장 꺼릴 수 있다. 거꾸로 야당에서는 그와 결부시키면 올 연말 재보선과 내년 선거에서 그동안의 '한'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충청권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홍역을 앓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시절엔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다 위헌 소송에 휘말렸고 이는 대통령 탄핵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곧 이은 총선에서 이른바 '탄 돌이'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열린우리당 간판만 달면 거의 대부분이 당선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소속의 대통령을 탄핵시키려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됐다. 정치를 떠나 '정도'를 거스른 결과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들을 줄줄이 지역에 내려 보내며 수정론이 충청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쳤다. 충청출신 정운찬 총리를 내세우며 수정론을 밀어 붙이기까지 했다. 결과는 국론분열의 후유증만 남긴채 실패로 돌아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세종시를 지킨 주인공들은 충청인 자신이었는데,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현 대통령이 가장 크게 '공'을 인정받는 분위기가 됐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인식되며, 충청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 충청권은 또 다시 정국 논란의 핵심에 서게됐다. 이제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다. 과학벨트 사업은 이명박 정부에서 미래 대한민국의 성장거점과 먹을 거리로써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려했던 국책사업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의 핵심사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인 사업이 졸지에 '지역 사업'으로 치부되는가 싶더니, 국책사업에 해당하는 사업비를,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지역에서 돈을 대라고 강요를 한다. 얼마전 처리된 정부 추경예산안에는 당초 과학벨트 사업비는 한푼도 없었고, 비슷한 사업비인 포항의 방사광 가속기 사업비는 500억원이나 슬쩍 반영시켰다. 예로부터 힘께나 써왔던 영남의원들이나 영남지역의 여론, 영남출신 정부관료들의 합작품이겠다. 실제로 대통령이 일일이 예산반영을 알지는 못했겠지만, 그의 '묵인'도 한 몫 했으려니 짐작하는 것은 '백성'의 몫이다.
결국 늘, 원칙만 생각하다 때 늦게 이를 발견한 충청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발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포항가속기 사업비를 삭감시키고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사업비를 700억원 편성시켰다. 하지만, 예결위 계수조정 과정에서 과학벨트 사업비는 300억원, 포항가속기에는 200억원이 반영되게 된다.
부대조건이라는 이상한 조항까지 붙여놓은 이번 과학벨트 부지매입비는 지역에 곧바로 논란을 불러왔다. 해석하기에 따라 코걸이나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이번 결과에 지역은 환영과 비판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전액 국고 부담이냐, 대전시가 일부 부담을 해야 하느냐의 논란의 불씨가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과학벨트는 부지매입비로 7000억원 이상이 투입돼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앞으로의 선거 결과에 따라, 사업이 춤 출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해당부처에서는 해명자료 까지 내며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사업면적 축소나 기간 연장 움직임으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 중간 중간에 치러질 재보선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고, 다음 대선을 가름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사업인 과학벨트 사업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는 깨어있는 여론과 정치의식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도 정략적인 계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주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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