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복경 대전지회장 |
연애시절에도 편지를 잘 쓰지 않던 남편이 자잘한 꽃무늬가 예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공을 들여 쓴 듯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당신, 생일 축하해! 앞으로 일주일에 3번은 내가 아침상을 준비할게.”
너무 놀라 “고맙다”는 말보다 “정말이냐”고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됐다. 386세대로 비교적 가정에 관심이 많고 자상한 남편이지만 가사와 육아 분담에서는 여전히 별개였던 게 사실이다.
우리 집 역시 매일 아침 아이들 깨워서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동시에 출근을 준비하다보면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물론 아이들 깨우고 아침 식사를 챙기는 건 당연히 여성인 내 몫이었다. 저녁에 돌아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생활을 십 수 년 하다 보니 아이들도 당연히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침이면 “엄마, 교복셔츠는 어딨어요?”, “양말은요?”, “간식은요?” 자잘한 질문이 집안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는 비단 우리 집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에서 전국의 19세 미만의 자녀를 둔 워킹 맘 1000명의 '워킹 맘 고통지수'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결과에 의하면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워킹 맘들이 전담하는 경우는 60% 이상이다. 워킹 맘의 절반 이상이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편의 선물은 그야말로 뜻밖의 횡재였다. 아침이라고 해야 우유에 시리얼, 과일이 전부지만 남편이 가사에 참여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렇게 시작된 주3회 남편의 아침준비는 우리 집만의 아침 풍경이 됐다.
'역시 난 결혼을 잘 했어'라는 착각에 빠져들 무렵 일이 벌어졌다. 늦은 시간에 돌아온 남편에게 “왜 이리 늦었느냐”고 잔소리 겸 타박을 했고 그날따라 예민하게 받아들인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바쁜 아내 생각해서 아침도 준비하고 있는데 고마운 것도 모르고 잔소리를 한다면서 말이다.
어릴 적부터 집안일이라고는 별로 해본 적이 없는 386세대 남편의 생각에는 여전히 육아와 가사는 여성의 몫이었다. 그동안 해온 아침 준비는 아내를 위한 배려였지 진정한 가사 참여는 아니었던 셈이다.
정부에서는 남편의 육아와 가사참여를 늘리기 위해 배우자 출산 휴가, 육아휴직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책보다 의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층 중 가사와 육아 분담이 비교적 잘 이뤄지는 가정을 보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가사에 참여했다는 남성들이 많다. 가정에서 집안일을 돕던 습관이 익숙해지며 결혼 후에도 가사분담이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가치를 실현하며 삶의 질을 높이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의 행복이 우선돼야 한다. 따라서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 함께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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