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한국인 첫 빈 심포니 수석 플루티스트 최나경씨 부모:최규남 성형외과 원장과 이대희씨
부모들의 로망인 '엄친아'. 공부 잘하고 성격 좋고 리더십까지 뛰어난 아들, 딸을 낳고 키운 부모는 어떤 인물들일까? 5월 가정의 달 특별기획, '남다르게 키웠다-신맹모지교'는 대전·충남에서 소문난 '엄친아들, 엄친딸'의 부모로부터, '남다른' 교육비법을 들어보기 위해 기획했다. 부모들을 직접 만나며 느낀 공통점의 하나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대신 아이가 잠이 부족한 게 안타까워 '공부하지 말고 어서 자'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엄친아'란 태고난 재능에다 스스로의 노력, 부모의 지원이 합쳐질 때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최나경씨의 부모도 딸의 성공은 '쉼없는 연습과 노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나경씨는 지나친 연습으로 오른팔을 다쳐 쉬어야했을 때도 '연습이 하고 싶어' 눈물 흘렸다고 한다. 부모가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땀과 노력으로 재능을 꽃피우며,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자랑스런 한국인' 최나경씨의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들어봤다. <편집자 주>
고사리 손에 콩알 같은 물집들. 플루트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6곡을 연주해내는 아이를 보며 아이엄마는 운명 같은 예감에 코끝이 찡해졌다. “내 아이는 플루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최나경(29·재스민 최)씨의 초등학교 시절 일화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세계 무대를 장악한 '엄친딸' 최나경씨의 부모 최규남(60) 성형외과 원장과 이대희(56)씨를 만났다.
-나경 양의 경우에는 타고난 재능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최나경씨는 3대에 걸친 음악가 집안의 핏줄을 타고났다. 외할아버지는 청주시립교향악단 초대 지휘자였던 고 이상덕씨, 어머니 이대희씨도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이강희 한국교통철도대학 음악과 교수와 이문희 충청대 실용음악과 교수가 외삼촌이다.)
“재능을 물려받은 부분도 있겠지만 나경이를 키운 건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엄청난 연습벌레입니다. 중학교 시절 밤을 꼬박 새운채 새벽까지 연습하다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쉬어야 한다'며 집으로 돌려보낼 정도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방음장치가 안된 방에서 연습하던 시절 이웃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오면 침실 옆 작은 옷방에 들어가서 연습하기도 했고 팔이 아파서 연습을 못할 때는 플루트를 보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콩쿠르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플루트를 그만하자”고 이야기하면 나경이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요.”
-플루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리코더를 배웠는데,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해서 식구들이 걱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뒤 성모초등학교 김혜영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됐는데 “나경이가 플루트를 배워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도 없었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나경이가 관악기 호흡을 스스로 익혀서 알고 있다”며 “플루트를 안 시키면 후회할 것”이라고 몇달을 끈질기게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캠프에 보냈고 그 때부터 플루트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나경이와 플루트의 만남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한자리에 모인 최나경씨 가족. 아버지 최규남 원장과 어머니 이대희씨, 동생 지호씨. |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이들 아버지가 아이 낳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너무 갖고 싶었고요. 그래서 설득 끝에 딱 한명만 낳기로 했으니 '딱 하나만 낳을 아이. 무엇보다도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태교에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검은콩이 좋다는 말에 콩가루를 타서 먹어보기도 하고 음악 듣고 책 읽고 잠잘 때 빼놓고는 늘 뱃속의 아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럼, 태교의 효과를 보셨는지요?
“무엇보다도 나경이가 무척 건강합니다. 체력이 받쳐주니 연습을 오래해도 지치지 않고 집중력도 뛰어난 편입니다. 또 뱃속에서 들은 음악을 나경이가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임신 중에도 꾸준히 바이올린 지도를 했는데, 당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음악을 나경이가 나중에 듣고서는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음악같다”며 익숙하게 여기는 경우를 봤습니다.”
-플루트 연습이 싫다고 투정부린 적은 없었나요?
“가끔은 골을 내기도 했죠. 부모를 위해 레슨을 받는 것처럼 굴기도 했고요. 그럴 때는 나경이 레슨에 온가족이 같이 갔습니다. 아이 아빠는 운동장에서 운동하고 저는 둘째를 업은 채 레슨이 끝나기를 기다렸죠. 나경이를 뒷바라지하느라 둘째에게는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하기도 합니다.”(나경씨의 동생 지호(25)군은 미국 시카고미술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군복무를 위해 휴학했다. 군복무를 마친 지금은 국내서 모델로 활동중이다.'쿨가이'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력이 있는, 훤칠한 키와 외모에 색소폰까지 연주하는 '얼짱', '몸짱', '재능짱', '훈남'이다.)
-나경 양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죠? 중학시절 지휘자 금난새씨와 협연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나경이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좋은 선생님들과 맺은, 귀한 인연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과 협연할 때도 금 선생님은 '어리지만 앞으로 대성할, 또 하나의 대단한 연주자를 발견했다'며 많이 칭찬해주셨고 그 후로 계속 금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경이도 '금 선생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중학생 시절부터 연주자로 대해주셨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모초등학교 시절 플루트에 입문하게 해주신 김혜영 선생님, 예원학교 시절 이홍규 선생님(현 충청대 실용음악과 교수), 한기세 선생님(현 서울시교향악단 수석연주자)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경이를 사랑과 칭찬으로 가르쳐주셨을뿐 아니라 지금도 연주회때면 공연장까지 와서 응원해주십니다.”
-서울 예원학교 시절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데 특별한 교육비법 같은 게 있으셨는지요?
“매일 나경이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에 고사성어를 인용한 좋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후 2시쯤 녹음해두면 4시30분쯤 하교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엄마가 어떤 말을 남겼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집에 도착해서 엄마의 음성 메시지를 듣고는 눈물 찔끔 닦아내고 플루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연습할 때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으신지요?
“연습은 시간 관리이기에,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생활시간표를 짜서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죠. 그날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완수하면 동그라미(O)를 쳐가도록 했는데 나경이가 다행히 그걸 재미있어 했습니다. 습관이 들어서인지 시간관리에 투철한 편입니다. 커서도 “시간이 아까워서 연애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거죠.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최나경씨는?
1983년 생. '첫'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인 신시내티 교향악단에 입단한 첫 번째 한국인 관악주자이자 2012년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연주단원으로 선발됐다. 서울 예원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플루트의 거장 줄리어스 베이커의 극찬을 받은 것을 계기로 만 16세에 미국 커티스 음학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콩쿠르에서 단독우승했고, 줄리어드 100주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미국과 유럽, 한국 등지에서 수차례 독주회와 협연을 갖고, 세계적인 플루티스트로 우뚝 섰다.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정리=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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