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기 편집부국장 |
우선 과학벨트 거점지구 부지매입비 7000억원의 분담문제가 아리송하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국책사업임에도 정부가 부지매입비 일부를 지방정부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었지만 현 정부에선 태도가 바뀔 줄 알았기에 충청주민들은 내심 불쾌감을 갖고 있다. 2011년 5월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대전 신동·둔곡지구가 선정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전시에 터 매입비 분담을 요구해 지역반발을 초래해 과학벨트 거점지구 사업은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해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공약에서 “과학벨트 조성비용은 정부가 지원하고 부지 매입비는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대전시와 충청주민은 기대감이 높았다. 박근혜 정부의 공식 출범으로 과학벨트 국책사업은 약속대로 순조로워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 정부의 관련부처 장·차관들이 잇달아 과학벨트 부지매입비의 지자체 분담 발언을 쏟아내 충청주민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에서 “과학벨트 부지매입비는 국가가 전액 부담할 수 없고 지자체가 일부 분담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앞서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은 지난 달 23일 “과학벨트 조성 부지매입비와 관련해 대전시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자체 분담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차관들의 이같은 발언은 박대통령이 대선 때 밝혔던 입장과는 어긋나는 부분이어서 당연히 정부 의지가 의심되고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정부 예산안에는 부지매입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사업 추진이 불투명하고 더뎌지고 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정치권도 정부를 지지하는 여당과 야당간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과학벨트 사업이 국가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부지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대전시와 정부가 부지매입비를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야당은 특히 정부가 금년 추경안에 과학벨트 부지매입비는 제대로 세워놓지 않으면서 이명박 정부당시 실세였던 포항 지역구인 이상득 의원을 빗댄 '형님예산'으로 분류된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예산 500억원은 편성해 놓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포항 방사광 가속기와 과학벨트 터 매입비는 따로 볼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올해 추경안에서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는 제쳐놓고 포항 방사광 가속기만 챙기는 모습은 영남에 정치적 기반을 둔 새누리당 영남권 의원들의 입김이 반영된 것이 아닌 지 되묻고 싶다. 국가예산배분에서 영남권 예산은 챙기면서 충청권 투입예산은 홀대 받아선 안된다.
과학벨트 문제는 또 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과학벨트 국책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용역을 의뢰받은 한국개발연구원의 조사결과 대전 거점지구에 입지할 기초과학연구원의 규모가 줄어들고 사업시기도 최소 5년 이상 늦춰질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켜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지역분열을 막을 수 있다. 만약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문제가 충청권의 대전이 아닌 영호남의 대구나 광주였다면 똑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까? 영남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 호남 민주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 관계자들이 쉽게 말을 뱉지 못할 것이다.
이번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논란거리를 계기로 국책사업에 대해 생각할 점이 있다. 국책사업을 공모사업으로 인식해 지자체에 부담을 안기는 시각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로봇랜드나 첨단의료산업단지 등 다수의 국책사업은 지자체간 경쟁을 부추겨 땅도 무상으로 지원받고 투자비도 지자체가 일정 분담하는 공모방식으로 추진됐었다. 그래서일까.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의례이 국책사업은 해당 지자체가 사업비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학벨트는 공모방식도 아니며 정부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결정한 대형 국책사업이다.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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