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날은 어린이로부터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온 마을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한집안의 잔치는 곧 온 마을과 잔치 마을을 넘어 이웃마을의 잔치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잔치를 열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점과 시설들이 있어서 예약하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면 그만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치는 온 마을 사람들의 어울림 그 자체였다.
어느 집안의 결혼식이나 회갑연 날짜가 잡히면 온 마을은 며칠 전부터 잔치 분위기에 들어간다. 그 가운데서도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가장 큰일이었다. 지금이야 잔칫날 하루를 특정 행사장에서 끝내고 뿔뿔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정해진 잔칫날을 전후하여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들었다. 모든 잔치음식을 손수 장만해야만 했다. 온 마을의 아낙들이 잔치를 앞둔 집에 모여들어 너나 할 것 없이 장도 보고 김치를 담고 부침개를 부치고 떡을 하고 약과와 식혜, 수정과, 두부, 술 빚기 등등 잔치음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잔칫집에서 풍겨 나오는 여러 음식 내음에 마을 아이들은 군침을 삼켜가며 잔칫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넓은 마당 한쪽 편에서는 마을 장정들 가운데 솜씨 좋은 장정이 돼지와 닭고기 등을 장만하기도 했다. 이때 마을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쭉 둘러서서 함께 거들어 주기도 하면서 지금은 실험실에서나 할 수 있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며칠 동안 준비한 잔치음식들은 작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우게 되고 잔칫날 오는 손님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잔치음식으로 가득 찬 작은 방을 과방(果房)이라 하였다. 마을 어른 중에 솜씨 있고 손이 재바른 분이 과방보기를 하였다. 과방을 보는 일은 매우 바쁜 일이었다. 손님들이 올 때마다 잔칫상에 잔치음식이 빠지지 않도록 준비한 음식을 고루고루 접시에 담아내는 일이었다.
이 과방은 마을 어린이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맛있는 잔치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는 욕심 아닌 욕심으로 과방 옆을 떠날 줄 몰랐다. 마음이 넉넉한 과방 보는 마을 아낙은 어린 아이들에게 잔치음식을 나눠주곤 하였다. 과방에서 잔치음식을 받은 어린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들과 나누어 먹곤 하였다. 그야말로 잔칫집의 과방은 보물창고 그 이상이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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