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충청도와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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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충청도와 재판

[시사에세이]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 승인 2013-04-29 14:04
  • 신문게재 2013-04-30 20면
  •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충청도는 사람들의 말이나 말투가 재미있는 것 말고도 사람들의 성향도 독특한 구석이 있다.

그 중 가장 도드라진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직설적으로 말을 못하는 것이지 안하는 것이 아니다. 충청도 사람들이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돌려 말하거나, 상대방의 면전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남에게 상대방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보고 다른 지방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엉큼하다'고 말한다. 그래, 그걸 두고 충청도 사람들이 엉큼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충청도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엉큼하다'는 표현은 조금 억울하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에는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까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을 알고 재판에 임하면, 화낼 일도 적고 공연한 시간 낭비도 줄일 수 있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을 한참 설득한 다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조정에 응할 당사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어쩔 수 없쥬~, 판사님이 허라면 허야지 별 수 없쥬~” 그런데,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표현이 약간 다르다. “판사님이 알아서 해주세유~”, “변호사님이 알아서 해주시겄쥬~”, “집에 가서 집사람한티 물어봐야쥬~” 이렇게 조정에 응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떠넘기는 경우는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서 충청도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봐도 최고의 극찬은 그저 “먹을 만하다”, 아무리 예쁜 것을 봐도 역시 최고의 극찬은 “볼 만하다”가 끝이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말꼬리를 흐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됐슈~”, “글쎄, 난 잘 모르겄네” 따라서 “어쩔 수 없쥬~. 판사님 말씀 들어야쥬~”라는 말에는 “내가 판사님 말씀에 설득 당해서 조정은 하겠습니다만, 체면이 있어서 덥석 '예'라고 대답은 못하니 이해해 주시오”라는 정도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판사님이 알아서 해주세유~”라는 말에는 “내가 조정하기 싫지만 대놓고 안한다는 말은 못하니 제발 저 좀 그만 괴롭히세요. 이 정도 하면 알아 들으셔야지”라는 정도의 의미가 들어 있으니 두 가지 표현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게 다가 아니다. 가장 답답한 것은 충청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법정에서 자주 “돈이 문제가 아뉴~”라는 말을 강조해서 사용한다. 돈 몇 푼 때문에 옹졸하게 구는 자신의 모습이 속물로 비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 치고 돈이 문제가 아닌 사람이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속아 아무리 돈 이외에 다른 명분을 찾아주어 봐야 조정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법정까지 온 사람들은 모두 돈이 문제고,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전혀 창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본인이 원하는 금액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재판은 당사자의 분쟁 속으로 들어가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당사자가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보다 쉽게 분쟁 해결이 가능하고, 보다 바람직한 분쟁 해결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을 당사자로 만나 재판을 한다는 것, 그것은 충청도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살짝 돌려서 음미해 보는 은근한 맛이 있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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