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
우리 부부도 그랬다. 발리를 신혼여행지로 결정했다. 결혼식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사 직원의 안내에 따라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여러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여행사 직원은 신혼여행기간동안 같이 움직이는 팀이니 서로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배려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고 신혼여행지로 떠났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환상적인 신혼여행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팍팍한 일정에 지치고, 무엇보다도 상상했던 신혼여행지의 자연환경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그런데 그때 일행 중 한 부부에게 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모여 술 한잔하자는 것이다. 외국음식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으로 고추장과 깻잎 통조림을 준비했었는데, 마침 술 안주거리로 좋겠다싶어 주머니에 챙겨서 초대한 부부의 호실을 방문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안주거리가 제법 많았다. 우리의 모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사 직원의 당부도 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 말수가 적었는데 술 몇 잔이 연거푸 돌아가니 금세 말수들이 많아졌다. 이 후 신혼여행 내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낮과 밤으로 이렇게 어울렸다. 금세 몇 년을 같이 지낸 사이처럼 친해졌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한 부부가 이것도 큰 인연이니 대전에 돌아가서 한 번 더 모이자는 제안을 했다. 으레 같이 여행을 하면 흔히 하는 말이 아니던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부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날짜를 잡았으니 만나자는 것이다. 신혼여행의 기분도 있고 해서 우리 팀은 한달 만에 다시 만났다. 소위 여느 잘 되는 모임에는 재미있는 사람이 꼭 있다. 복사기 사업을 하는 공사장이 딱 그랬다. 공사장의 재미있는 말솜씨에다 신혼여행지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이 안주거리가 되어 정말 큰 웃음 넘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후 우리는 분기별로 만났고 매년 두 번씩 1박2일로 여행도 다녔다. 가족 포함 열다섯 명이 같이 모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렇게 10년을 넘게 만났다. 작년에는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결혼 10주년 기념 3박 5일간의 제2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는 지인들에게 우리 신혼여행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모두 재밌어한다. 보통 신혼여행의 추억을 생각해서 한 두 번의 모임은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만나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렇게 지속되는 이유가 뭐냐고.
우리는 하고 있는 일이나 취미, 성격 모두 색깔이 다르다. 같은 것이 거의 없다. 공통점이라고는 신혼여행의 추억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거 하나다. 그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답을 조금 알 것 같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신혼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특별한 주제 없이도 뻔한 말을 펀(fun)하게 크게 웃어주고, 애들이 태어나고 부터는 애들끼리 싸우면 내 새끼 먼저 혼내고, 10년 가까이 되어서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름의 매력을 인정하고 모자란 점은 서로 채워가는 재미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통(通)해서는 아닐까?
우리는 십년마다 신혼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의 신혼여행은 아직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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