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각설하고, 본론은 말 엉덩이, 더 정확히는 말 엉덩이 사이즈 얘기다. 미국 우주왕복선 추진로켓이 4피트 8.5인치(약 1.435m)인 사연부터 보자. 추진로켓을 유타 공장에서 플로리다 발사대까지 기차로 옮겨야 해 기차 선로 폭에 맞춰졌다는, 그런 얘기다. 그러나 아직 황당해 해서는 안 된다.
미국 철도의 모델인 영국 철도의 선로는 석탄 운반용 마차 선로 위에 깔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떠올리며 다시 2000년 전 로마 마차 선로의 내력을 따져볼 차례다. 영국을 정복한 로마군이 도로를 개설할 때 로마 전차 폭(4피트 9인치)을 따랐다. 로마 전차로는 도로를 덮어 만들었고, 도로는 쌍두마차 엉덩이가 기준이었다. 흐름도는 말 엉덩이 2개→로마 도로→마차 선로→기차 선로→추진로켓 순이다.
어떤가. 우주왕복선 추진로켓은 말 2마리 엉덩이에 맞춰 설계된 셈 아닌가. 황당하지만 이처럼 과거의 궤적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한다. 혁신의 어려움, 관료주의의 폐해도 대개 이 같은 유형이다. 물론 나로호는 특수 제작한 무진동 차량과 해상으로 부품이 운반되고 상용차 제조업체의 트랙터로 발사체를 운반해 '말 엉덩이'에 직접 맞춰 디자인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어찌어찌 삼세번에 하늘문을 연 나로호가 103분에 지구 1바퀴를 돌지만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란 데 있다. 한국형 차세대 발사체, 자체 개발 나로호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 여기서 잠깐. 충청권은 경기 광명갑이 지역구인 민주통합당 백재현 국회의원에게 빚을 '졌다'. 추가경정예산에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 예산(1350억원) 반영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예산 미반영을 성토해줘 고마워할 일이 생겼다.
동시에 한꺼번에 빚을 탕감해도 좋을 섭섭한 일도 생겼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1227억원) 예산이 '불요불급한 예산'이라며 전액 삭감을 주장한 것이다. 우주산업에는 “별과 함께 달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별의 운행을 바라보라”는 로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우주적 눈에 우주적 동력을 실을 예산이 받쳐줘야 한다. 산업연구원은 나로호 경제적 파급효과를 1조8000억~3조원으로 추산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은 자본주의적 가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는 아니다.
말 엉덩이 얘기 꺼낸 김에 하나 더. 중국어에서 '말 엉덩이를 다독이다'(拍 )는 '아부하다'로 쓰인다. 몽골족은 자기 말을 칭찬하면 되게 좋아했는데(지금도 그런다), 이 말치레가 점점 아부가 됐다. 한국형 발사체 사업이 4년 연속 예산 삭감으로 지지부진한 터에, 말 엉덩이 다독이듯 토닥토닥 다독이자. 말은 쫄쫄 굶었는데, 배부를 땐 당근도 소용없다고 우기진 말고.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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