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벌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에 위치했던 탓에 유난히 산성이 많다. 또 여느 도시보다 하천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대전천, 유등천, 갑천 등 3대 하천이 도심을 흐르고 있어 친수공간이 풍부하다. 여기에 대덕연구단지와 카이스트, 3군 대학 등이 입지해 박사들이 인구대비 많은 도시다. 길에서 부닥치는 게 박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 대전이 유행에 가장 민감한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전국에서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남들보다 튀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국리서치가 전국 주요도시 20~59세 남녀 79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내놓은 2012년 패션소비와 구매성향 분석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 패션 소비태도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서울은 다양한 쇼핑채널에 노출돼 충동구매 많지만 제조일괄유통형(SPA), 세일 등 가치소비 지향이 높았다. 강원은 사회공헌을 많이 하는 국내 브랜드 선호도가 최고였고 명분소비 성향을 나타냈다. 대구는 전통적인 브랜드와 검증된 품질을 따지는 보수적 쇼핑을, 부산은 개성있는 잡화상품 비중이 높고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을 선호했다. 울산은 스포츠댄스 등 취미관련 아이템 비중이 높았으며 광주는 의류소핑 빈도가 가장 높고 최신 아웃도어브랜드 소비가 활발했다.
대전은 패션에 대한 관심은 전국 최고지만 실제 의류 구입빈도는 최저였다. 설문 항목중 '편안함보다는 패션을 따진다', '패션 관련 기사와 잡지를 즐겨본다', '연예인 패션을 따르는 편이다', '정말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쇼핑을 한다'에선 대전이 수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전 소비자들의 높은 패션 관심이 곧바로 구매와 연결되지는 않았다. 대전 소비자들은 최근 1년간 의류를 평균 4.62회 구입해 전국 평균 4.87회에는 미치지 못했다.
패션에 대한 관심과 실제 소비사이에 간극을 보이는 대전시민들의 이같은 소비행태를 산업심리 전문가들은 충청권 소비자들의 태생적인 기질로 보고 있다. 선거 때마다 판세는 일찌감치 정확히 읽으면서도 정작 본인이 투표할 후보자를 고르는 데는 신중함을 보이듯이 패션 소비에서도 그같은 기질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은 많지만 확신이 선 뒤에야 행동에 옮기는 충청인들의 성향이 충동구매를 낮추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충청인의 기질에 바탕을 둔 대전 소비성향 분석에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대전시민 중 충청인들의 태생적 기질을 갖춘 충청출신은 전체 인구의 35%선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영ㆍ호남,수도권 등 외지인들이다. 그렇다면 외지사람들이 대전에 살면서 충청인 기질로 바뀌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대전이 짬뽕(?)도시이다 보니 남들보다 튀어 보이려 유행에 민감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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