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국전서예초대작가 前 대전둔산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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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제(沈旣濟)는 중구 중당(中唐)의 전기작가(傳奇作家)로, 당대(唐代) 전기 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를 저술하여 명나라 탕현조(湯顯祖)의 희곡 한단기(邯鄲記)의 바탕이 되었다. 다음은 '침중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 가보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그곳에서 당대 명문인 최씨의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행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메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邯鄲)을 떠났다.
한단지몽(邯鄲之夢)처럼 덧없는 꿈이 아닌 높은 꿈을 향한 이상 속에서 삶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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