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현실, 자존심은 고이 접어두고 맡은 일에 충실하며 온갖 심부름을 자청하지만 5년째 계약직 상태다. 아이를 가졌을 땐 출산휴가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육아유직? 하늘의 별보다 더 먼 남의 이야기일 뿐. 감기몸살로 펄펄 끓는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하는 A양에겐 조국 통일이나 지구 평화보다 정규직 전환이 가장 큰 소원이다.
#. 6시, 시계바늘이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B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칼퇴근은 기본이고 회식은 선택이다. '계약직=무소속'이라는 신념은 오로지 시간외 수당으로만 깰 수 있는 법칙이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에 '불필요한 친목과 아부로 똘똘뭉친 음주행위'라며 일침을 놓고, 업무가 아니라 가족으로 참석해 달라는 말엔 '교회가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오래있지 않을 회사에서 어떤 의미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다른 두 비정규직 이야기는 단지 드라마 속 스토리일 뿐일까. 어쩌면 일상속에서 한번쯤은 스쳐 지나간 인물일 수도 있겠다. 다만 위풍당당 계약직 B씨보다는 참고 참고 또 참는 캔디형 A양이 더 현실적이다.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프리한 직장인'은 희망사항 일뿐, 회사에 얽매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을 고집하기엔 경제, 사회적 현실이 마냥 물렁하지 않건만 왜 직장인들은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쓰 김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근로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들의 의욕을 끌어내지 못하는 기업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두 가지 상황을 펼쳐본다.
첫 번째는 누가봐도 안정된 직장, 연봉도 빵빵하고 복리후생도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다만 업무성과로 인한 스트레스는 기본이고 버릇없는 후배와 아부를 바라는 윗사람 비위를 맞추려니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어진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스펙을 쌓아 더 나은 직장으로 점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3년째 서랍속에 사표를 곱게 넣어뒀다.
두 번째는 월급은 박하지만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회사는 직원들이 생계형이라는 것을 안다. 직원들은 회사가 사라지면 본인들도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 조용히 읊조린다.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 트리인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이 곧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되지. 그 하찮은 전구끼리도 함께 라서 오늘도 살아갈 만하다는 것을.”
상상일 뿐이지만 어떤 상황을 선택할 것인지 꽤나 고민된다. 그러나 이런 행복한 고민조차도 쉽게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풍당당 '미쓰 김'을 볼때면 비정규직 노조간부가 분신하고, 정규직 전환을 위해 파업선언에 나선 비정규직의 투쟁이 오버랩 된다.
대한민국 비정규직 근로자가 지난해 정부통계 기준으로 591만 1000명, 스쳐 지나가는 직장인 3명중 1명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셈이다.
IMF 이후 비정규직의 증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실제 비정규직 규모는 800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근로자 고용불안의 주범인 비정규 현상은 여성들에게 더 밀접해 있어 사회적 문제를 넘어 저출산 현상을 가중시키는 국가적 과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비정규직 규모를 보면 남성 27.2%, 여성 근로자 41.5%로 나타나 결혼과 출산 이후 여성의 일-가정의 양립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 양극화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라며 2015년까지 공공부문과 대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유도를 공약했다. 또 임기중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이 내년부터 매년 3월말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황을 정보망에 공시하는 고용형태 공시제로 기업 스스로 비정규직을 줄여나가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말 많은 무기계약직 전환과 기간제 대량해고ㆍ외주 용역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부디 효율적인 정책과 장기적 계획으로 약속을 지켜 1분마다 생존위기를 겪는 해녀마냥 해고위기에 허덕이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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