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이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도대체 한국 부모와 한국 대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대학에서 생활하다 보면 웃지 못할 일들을 종종 겪는다. 엄마는, 감기에 걸려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음을 교수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수업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기도 하며, 놓고 온 과제를 학교로 가져다주기도 한다. 엄마는, 교환학생 제도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고 날짜에 맞춰 서류를 접수해 주기도 하고, 답사 등 학과 행사 일정을 꼼꼼히 확인해 챙겨주기도 한다. 심지어 엄마는, 수강 신청과 성적 이의신청, 취업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대학생 자녀를 대신해서 이처럼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도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맴맴 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헬리콥터 맘'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사사건건 엄마에게 전화해서 묻고 결정하는 '마마보이', '마마 걸'의 기질을 가진 '마마 대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없이는 불안한 어른 아이들…. 부모는 아이들이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대학생은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건 아닌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분위기를 바꿔서, '환'이라는 참 괜찮은 대학생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언젠가 수업이 끝나고 우연찮게 학교 앞 중국집에서 환이와 자장면 한 그릇을 먹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부모님께서 의료봉사로 몇 년째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됐다. 삼형제만 덩그러니 한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4학년 졸업반인 환이가 맏이고, 둘째 남동생은 군복무 중이며, 막내 여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란다.
마침 군복무 중인 둘째가 휴가 나와 환이 자취방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막내 여동생은 지난해까지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다가 대학 진학문제로 올해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여동생은 한 달에 한 번 외박하는 날 대전으로 와 오빠와 함께 지내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참 대견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열일곱 살여자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맏이인 환이 어깨가 너무도 무겁게 보여 안쓰러웠다.
나는 삼형제가 모두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님이 원망스럽지 않니? 한국에 계시면 동생들도 덜 힘들고 너도 동생들 걱정 지금처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동생들도 많이 섭섭해 할 것 같은데?” 환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선생님. 한국에 계실 때도 어머니께서 간호사 일을 하셔서 부모님 두 분 모두 바쁘셨거든요. 막내 여동생은 제가 반은 키웠는걸요? 하하하…. 둘째는 군 제대하고 바로 복학해야 하고, 막내도 대학 가야 하니 제가 좀 더 부지런해야죠. 부모님 도움도 도움이지만 형이고 오빠니 제 할 일은 제가 해야죠. 그리고 둘째나 막내도 다들 으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후루룩 남은 면말을 입으로 가져가며 씨익 웃는 환이.
환이의 저 밝은 웃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순간 한없이 부끄러웠고 순간 가슴 뭉클함이 진하게 전해졌다. 아마도 삼형제의 따뜻한 우애와 가족의 끈끈한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너희 삼형제도 대견스럽지만 너희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도 정말 대단하시구나.” 참 건강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다. 어차피 끝까지 고기를 줄 수 없다면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물고기 잡는 법을 깨우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푸른 바다에서 펄펄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갈망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왜냐하면 방법의 깨우침은 간절한 바람, 갈망을 동기로 할 때 저절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부모는 자녀 '앞에서' 이끌어가는 사람,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건강한 가족의 탄생은 물고기를 갈망할 줄 알고 잡을 줄 아는 자녀와 이를 옆에서 든든히 지켜봐 줄 수 있는 부모가 한마음일 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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