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경제부 기업과학팀장 |
학사 졸업생 828명 가운데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인원은 542명(65.5%)이었고 이들 가운데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인원은 104명(19.2%), 로스쿨은 4명(0.74%) 등 모두 126명(23.2%)이 전공이 아닌 분야로 진학했다.
학부 전공을 포기하고 비이공계로 진학하는 졸업생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 과학기술 인재양성을 위해 설립된 KAIST의 설립 목적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치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은 2008년 38명(8.98%)에 불과했지만 2009년 50명(9.5%), 2010년 72명(14.1%), 2011년 80명(15.1%)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KAIST가 이공계 인재 양성 요람이 아닌 예비의사 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KAIST의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KAIST 학생들이 전공을 포기하고 비이공계분야로 진학하는 원인을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공계 기피는 신분이나 소득이 비이공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의사보다 직업의 안정성과 소득 수준이 모두 낮아서 전공을 포기하고 치의학전문대학원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공계 출신자들 개인이 추구하는 사익을 뒷받침 못해주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전공을 포기하고 비이공계로 진학하는 졸업생들의 개인문제가 아니어서 지금의 상황은 이들에게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다.
대학 입학 후 졸업까지 석사는 6~7년, 박사는 9년 이상이 걸린다. 병역이나, 전문연구요원 기간 3년을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이후 박사 후 과정 등 이공계 전공자들은 20~30대 청춘을 연구실에서 보내야 한다. 30대 중반 내지는 40대가 다 돼서 남들보다 10~15년 늦게 사회에 진출해도 안정적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때문에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 교수직이나 소득이 높은 의사가 출연연 연구원이나 일반 회사 연구원보다 더 인기가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박사 학위를 받고 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정규직 직장이라도 얻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30대 중반까지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타이틀을 간신히 얻는다면 누가 이공계에 진학하겠는가? 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5~2년이다.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라면 이 기간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투자했던 학자금을 벌기에도 빠듯하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고 놀라운 일도 아니어서 출연연의 비정규직문제는 이미 고착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출연연은 프로젝트별로 3~5년 비정규직 연구원을 채용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비정규직 박사나 석사 등 고급이공계 인력들은 또다시 보따리를 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학생들의 도전의식이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
KAIST 한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학생들이 창의적고 도전적인 연구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도 “대학평가 등으로 학생들의 취업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석사,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새로운 연구, 도전적인 연구를 하라고 말은 고사하고 졸업장 주기에도 바쁘다”라는 말로 학생들의 질보다는 학위 양산에 바쁘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전기·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에 힘입어 선진국 반열에 올랐던 일본은 지난 20년간 경기침체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일본도 이공계 기피로 인해 고도의 기술을 개발할 이공계 인재가 갈수록 줄면서 뛰어난 기술력을 만들어내는 경제기반이 약해지는 등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과학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와 적절한 보상체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과학의 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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