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준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하지만, 별도로 날을 지정할 필요가 있는지, 시기만 되면 반짝하며 장애인들을 뉴스거리로만 만들지 않는지 등등 장애인의 날 제정과 실효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더 주목할 것이 있다. '장애인의 날'을 장애 당사자들은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2005년 무렵, 장애 당사자들은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조직하며 더욱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장애인관련 정책 제도화를 촉구했다. 당사자들 스스로 권익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하며 이날을 '그들' 나름대로 공식화했다. 뿐만 아니라, 2년여 전부터 장애인 관련 행사의 걸개그림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
'나는 장애인이다. 차별에 저항하라.'
사회에서 그들이 체험한 '차별'의 심각성이 그만큼 크고 깊었음을 의미하는 저항의 표출이다. 이는 역설적 강조로서 자신들을 '장애인'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에'그 정도였던가'라고 반문하면서도 심각한 절박감이 느껴진다.
앞서 독일에서도 같은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젊은 독일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중심사회가 지닌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장애인운동이 있었다. 바로 '불구자운동'(Kruppelbewegung)이다. 장애를 가진 자신들을 스스로 비하하듯 '불구자'라 표현하면서 대 사회적인 저항운동을 펼쳤다.
주류사회에 인정받지 못한 권리와 사회로부터의 합리적 배려에 대한 몰인식에 낙인됐던 자신들의 모습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리며 당당하게 표현했다. 불구자 운동은 독일 장애인들의 '자기결정적 삶(Selbstbestimmtes-Leben)' 운동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최근 국내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의 핵심을 이루게 된 미국발'장애인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운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독립적인 삶을 권리로서 보장하고 실현할 것을 강조하는 '자립생활 패러다임'은 자기결정과 선택, 책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내 삶의 주체'의 권리를 가진 장애인들이 추구하는 '정상적인 삶'의 지향점은 자기결정적 삶 운동이자 자립생활운동이다.
최근 국내 장애인 분야에서 많은 정책적 변화가 이뤄졌다. 지금껏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인권과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이 장애인지적 측면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또한, 차별 금지와 자립적인 삶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내 비장애인들의 관심은 '그들'이 진정 느끼는 차별이나 권리 침해의 심각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듯하다.
단지, 언론보도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장애극복'이나 '인간승리' 드라마에 간헐적인 감동과 온정을 보여주는 게 가장 흔한 관심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장애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90% 정도가 후천적 원인에 의한다는 사실에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들'의 삶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의 일로만 치부하며 무디게 살아왔다.
아직도 보편적 복지 측면에서 장애인들에 주어지는 다양한 '합리적 배려'들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역시 요원한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불구자 혹은 장애인으로 부르며 차별 금지 및 생존을 외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삶에 대해 심각히 고민을 해봐야 한다.
또한, 장애인의 날이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든 간에, 항상 우리 사회의 장애인지적 감각이 좀 더 예리하게 발휘돼 장애 당사자들을 분리하고 배제, 차별, 소외시키는 환경들을 '철폐'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진정한 공동체 시대를 호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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