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자 공주중학교 교사 |
교단에 선 지 올해로 28년째가 되는 나는 작년에 열심을 다한 교사에게 주어지는 '학습연구년제 특별연수'라는 뜻 깊은 기회를 가졌다. 도내 총 49명의 선생님이 모두 대학 등 교육 기관과 연계하여 전문성 심화 연수에 참여하고, 국내·외 교육, 문화의 현장 체험을 통해 교사로서의 역량 강화와 참교육에 대한 의견과 지혜를 모으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특별히 국어교사로서 '말하기, 글쓰기, 독서'에 관련된 글과 만나게 될 학생들이 '위대한 나'를 꿈꾸게 할 길라잡이 마련에 온 힘을 다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지난 3월 드디어 학교로 복귀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동안의 공백 후에 맞은 학교업무들은 무척 낯설었다. 학년부장, 생활지도, 급식지도, 교문지도, 학급담임, 방과후 학습, 국어, 생활국어 20시간, 문학영재, 스마트기기 연수(스마트교육 시범학교) 등.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 어수선한 수업, 노안으로 글자들은 헷갈리고 두통이 심해지더니 잇몸병까지 나 새싹 움터나는 땅속처럼 온 몸이 아우성을 쳐댔다. 휴일을 반납하고 일에 매달려도 속도는 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가는 업무와 더딘 이해로 눈앞이 캄캄했다.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리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나 자신이 초라하여 눈물만 났다. 현장 부적응자가 된 듯해 도망치듯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월요일, 무거운 걸음을 옮겨 교무실에 들어서 컴퓨터를 켜니 새벽잠 깨서 보내 준 언니의 메일이 와 있었다.
혹독한 겨울 이겨내고 온 봄이기에 더욱 찬란하네 그 빛. 너의 봄은 더욱 그러하리.
-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이 활활/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너의 끊임없는 정성이 너와 그 언저리들을 진정 봄볕 들게 할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지금처럼 사소하지만 바른 일상의 몸짓들 이어가길 바란다. 사랑한다 내 동생!
그때 나를 위해 불러주는 응원가가 들려왔다. 오늘날 교사의 길을 걷게 해 준 우리 오빠, 언니, 어려움 속에서도 혼자 꿋꿋하게 공부해 공무원이 된 큰 딸, 올해의 첫 만남인 복학생 현우, 교사의 생명은 '정성'에 있다며 격려하시고 인내할 것을 권하신 교감 선생님, 나는 어렵기만 한 프레지를 활용하여 수업하는 신임 선생님, 바쁜 중에도 친절하게 업무를 안내해주시는 부장 선생님들과 여러 선생님들. 눈물을 거두고 둘러보니 그렇게 많은 얼굴들이 나를 향해 '잘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미소 짓고 있었다.
3월 마지막 날, 오늘도 교무실 책상에 앉아 맡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더디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을 위해 애쓰며 4월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거룩한 배움-변함없는 진실은 삶이 다할 때까지 주어진 길과 일 속에서 내 삶을 아름답게 해준다는 것-을 또 알아간다. 그리고 올해도 공주중학교 2학년의 주제인 “다 함께 손잡고 가는 길”, “작은 것의 힘, 태산을 이룹니다.” “위대한 나”의 발견을 위해 받은 사랑만큼 내가 큰 소리로 응원가를 마련해 불러주어야 한다는 것을.
사골 우려먹듯 몸만 혹사하지 말고 보양하라며 오빠가 보내준 각종 영양제, 마음을 다독여주는 언니의 꽃 시와 편지들. 나는 이제 무소의 뿔처럼 의연히 정성을 다해 응원가를 들으며, 불러주며 다시 일어나 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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