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 |
봄입니다. 지난 주말 내린 봄비덕분인지 나무들도 연초록으로 새단장을 합니다. 대지 역시 봄기지개를 켜면서 여기저기 새싹을 틔웁니다. 다시 한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계절변화의 놀라움을 새삼 실감하면서 새봄을 만끽합니다.
L형.
언어의 유희처럼 들리겠지만 누군가 그랬습니다. '봄'은 말그대로 '보다'의 명사형 '봄'과 같이 보는 즐거움이 있는 그래서 '봄(spring)'은 '봄(seeing)'이라고….
그도 그럴듯합니다. 경험상 봄만 되면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그렇고,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서 움트는 생명을 보면서 'spring'과 'seeing'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계절의 봄과 시각적인 봄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역동하는 생명의 계절 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L형의 눈에는 뭐가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이나요. 아님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나요?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일까 의아해 한다면 L형은 'spring'과 'seeing'의 관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계절의 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대지의 숨결입니다. 바로 생명력이죠. 생명력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연초록의 새싹들만 눈에 보인다면 생명의 계절 봄은 온데간데 없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L형.
오랜만에 다시 편지글을 쓰면서 새삼 말장난같은 봄타령을 왜 했냐고요.
내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올들어 흥을 돋울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입니다. 바로 '사회적 자본'이죠.
신뢰와 배려, 봉사, 믿음, 나눔 등 삶의 질을 한층 격조있게 높일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인 사회적 자본을 키워나가자는 공감대 확산말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사회적 자본'과 '봄(spring)'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가 있는 걸로 판단됩니다.
엄동설한의 모진 추위를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내며 봄비 촉촉히 적신 대지에 이름모를 새싹을 틔우는 '봄(spring)'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살맛나는, 기분좋은 그리고 절로 행복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seeing) 사회적 자본 확충은 분명 같은 맥락인거죠.
L형. 그런데 사회적 자본확충과 관련해 문제가 있어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득에만 길들여져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사회적 자본에 대한 근본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빈약하다는 증거겠죠. 꼭 이기주의가 아니더라도 나말고는 상대가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무형의 자산인 신뢰와 믿음, 봉사, 나눔, 배려를 키울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사람사이의 좋은 관계망을 형성하자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이라도 한 것인양 한쪽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L형. 여기에 대한 진단은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흔히들 사회적 자본이 발달한 나라로 일컬어지는 유럽 선진국가에서 보면 똑같은 신뢰인데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기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뢰는 공평성에서 비롯돼야 하는데 그 공평성의 잣대인 신용과 관련한 기회가 유럽 선진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를 막론없고 단 한번이라는 거. 하지만 우리사회는 어떻습니까. 누구에게는 단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누구는 몇 번씩, 그리고 아예 단 한번의 기회도 없는 그런 구조때문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좀 치사한 비유지만 사회적 자본이 발달된 사회에서의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사회적 자본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우리의 사회적 자본 척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L형.
자신에 대한 앎은 곧 다른 사람에 대한 앎이라고 합니다. 보다 가까이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새봄과 더불어 대지의 속삭임과 새옷으로 갈아입는 나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과 눈을 떠보는 건 어떤가요. 요즘 화두인 힐링이 따로 있나요. 이게 힐링이지 안그래요? 그리고 안과 밖은 둘이 아니고 하나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L형. '봄(spring)'과 '봄(seeing)'의 관계에서 '사회적 자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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