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연 장애인협회장 “육체적 장애보다 사회 편견ㆍ냉대 더 가슴아파”

윤석연 장애인협회장 “육체적 장애보다 사회 편견ㆍ냉대 더 가슴아파”

29살때 사고로 왼쪽다리 잃고 장애인 인권위한 새 삶 결심 구두 수선ㆍ주차장 관리 등 일자리 만들기부터 주력

  • 승인 2013-04-09 13:56
  • 신문게재 2013-04-10 12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오는 20일 제33회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대전시내 4만여 지체장애인 회원을 이끌며 장애인 복지를 위한 일이라면 최일선에 서서 적극 앞장서고 있는 윤석연 대전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만나 그가 장애인 복지에 헌신하게 된 계기와 협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대한민국의 법정 기념일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령은 장애인복지법 제 14조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날이 있는 그 주 1주일을 장애인식개선주간으로 정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인식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스스로의 재활을 통해 비장애인과 더불어 지역사회내에서 생활하는 것은 장애인 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장애인'하면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고, 지역사회내에서 장애인의 강인한 삶의 극복 의지를 접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것입니다.”

▲사고로 다리를 잃다

“제 나이 스물아홉살때였습니다. 중장비사업을 하던 1992년 1월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왼쪽 다리를 대퇴부까지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절단 장애를 입고, 심리적 절망과 상처의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절망적인 현실을 탈피해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절망해가는 아들의 옆을 지키시던 제 어머니는 제가 안보는 곳에서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강인한 모습으로 간병을 하시면서 “평생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다오”라고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의 눈물을 보는 순간 저는 사고 나기 전처럼 다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이 된 후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삶 시작

“양쪽 목발을 짚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고, 아내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 점점 제가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처음 찾아가던 날 담당 직원이 너무나 불친절해서 스스로 무시당했다는 모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 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아픈 순간이었지요.

제 주위를 돌아보니 저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하소연 할 곳도 없이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이 보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장애인들이 지닌 육체적 장애보다 사회 속에서 느끼는 편견과 냉대의 장애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우리 장애인들이 우리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데 밑거름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

1992년 제가 장애인이 되고 보니 제 눈에 저와 같은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처지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면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음도 알게 됐죠. 이때 (사)대전지체장애인협회와 인연을 맺고 유성구지회를 설립해 초대 유성구지체장애인협회장이 되면서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장애인 일자리 찾기

“당시 많은 장애인들은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들에게 허용되는 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증장애인에게 있어서 취업이란 '그림의 떡'이었죠. 이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전 장애인 일자리 만들기에 주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덕연구단지의 각 연구소 내 구두 수선소를 시작으로 공영주차장 관리, 세탁업, 임가공을 비롯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찾아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로 연계했고, 일반 경쟁 고용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보호고용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노동청의 지원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장애인일자리사업 등을 통해 취업을 연계했습니다. 이때 난생 처음 월급을 받아든 어느 정신지체장애인의 밝은 미소는 저에게 새로운 힘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장애인 장학사업과 장애인 복지관 건립

“저는 장애인 일자리 찾기와 더불어 자신의 장애나 부모의 장애와 가난으로 인해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상황이 안타까워 올해로 19년째 장애인 가정을 위한 장학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재활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재활 치료와 자립 지원을 위한 전문 기관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 저는 수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을 개관하고 초대 관장이 됐습니다. 복지관에는 주간보호센터와 재가복지봉사센터, 아동발달지원센터, 수영장까지 생겼는데 이는 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노력한 덕분입니다. 복지관은 280여개 단위 사업을 통해 장애인과 지역주민을 위한 전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세상과 장벽 허물기

“저 스스로가 장애인으로 살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장애인 동료들이 세상에서 느끼게 되는 사회적 불리함을 하나씩, 하나씩 극복하고, 세상과의 장벽을 차근차근 허물어가기 위해 기꺼이 제 삶의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 1995년 당시 대전시가 장애인 시범도시로 선정된 후 장애인체련관을 건립하기로 했지만 극심한 주민 반대에 부딪치게 됐습니다. 이때 장소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을 만나 설득하고, 장애인에게 유익한 공간이 주민들에게도 얼마나 편리함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며 동분서주했습니다.

결국 장애인체련관은 서구청의 일부 건물을 사용하게 됐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맞서 장애인의 건강한 삶에 대한 권리 회복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과정들을 통해 주민들과의 소통 방법을 찾고,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앞장서 주변정화운동을 펼치면서 그동안 장애인은 막연하게 '수혜자'로만 인식되던 인식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이웃'임을 강조했습니다. ”

▲4만여 대전지체장애인의 대표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장 되다

“주변 장애인들의 추대와 중앙지체장애인협회의 추천으로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4만여 대전지체장애인들을 대표해 활동하면서 생각한 점은 장애인의 실질적인 복지 증진을 위해서 장애인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장애 없는 세상, 장애인이 장애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면서, 대전지체장애인협회를 도와주시는 많은 후원자와 2만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장애인 스스로가 강해지고 장애인이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당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삶의 질 높이려면 직업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실무적 한계를 느낀 저는 전문적인 이론을 접목해 장애인들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전대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행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현재도 끊임없이 저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행복함을 느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행복하려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여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도 직업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하는 일에 투입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장애인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2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까지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장애인들만이 해왔던 영역의 일들을 장애인들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제가 20년 이상 장애인으로 살면서 느껴왔던 부분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입니다. 사회적으로 약자를 배려하고, 양극화 현상이 해소될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계층간 갈등이 해소되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좋아져야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위한 협약과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지난해에 대전면허시험장과의 협약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이 대형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을 확대했습니다. 대형면허를 소지한 장애인들이 각 기업, 관공서의 대형버스와 시내버스를 운행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된다면 장애인이 우리 사회 내 비장애인과 더 많이 만나고 소통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최근에 중증장애인 일자리 우선고용과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정책 활성화를 위해 사단법인 안다미복지재단과 후원기관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세종시 조치원읍에 소재한 안다미복지재단은 중증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에 의거해 중증장애인 8명과 일반장애인, 비장애인을 포함해 55명이 근무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LED조명, 전광판, 체육공원시설물, 도로안전시설물, 배전사업 등 중증 장애인 생산시설 5가지 품목을 승인받아 공공기관에 판매하고 있지요. 현재 중증장애인생산품사업본부에서는 직업교육확대를 위해 장애인학교에서 주 4시간 2~3개월의 맞춤형교육을 실시해 기능전문직을 양성하고 남녀 차별 없이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약을 통해 대전지역 장애인들의 자활과 자립 기반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중증장애인과 장애인들이 사회 일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자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직업 교육을 확대해 전문기능직을 양성할 것입니다. 매년 치르고 있는 장애인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전문 직업인을 많이 배출하고, 사회각계각층 인사들을 지체장애인협회 고문으로 위촉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관심과 배려를 통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게 저의 생의 모토입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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