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 |
친구와 술을 마실 때나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 앞에서 맥주를 따를 때에도 술병을 돌려가며 라벨을 손바닥에 쥐고 따르면서 잘난 체를 하던 치기(稚氣)어린 학창시절의 기억이 있다.
며칠 전에 어느 소주회사 공장장의 술 따르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 분은 술자리에서 항상 라벨이 상대방에게 보이게 해서 술을 따른다고 했다. 내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방식과 정 반대의 주법(酒法)이다. 그 분의 의도는 자신이 만든 소주의 라벨을 상대방에게 한 번이라도 더 인식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술 따르는 방법 하나만 갖고도 정 반대의 방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비유가 된다. 이 세상이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같은 사안을 다르게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차이에는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합의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이 불법으로 취급되는 세상도 있다. 예를 들면 선거법 위반이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이명수, 김동완 두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지역구도 아닌 금산에 사는 5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의 20년 전에 갓 마흔을 넘은 최연소 관선 금산군수로 부임해서 맺은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금산에는 아직 많이 있다.
나 자신도 나보다 기껏 해야 한두 살 많은 젊은 군수들이 펼치는 행정에 감탄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인물도 잘 생기고 말도 잘하면서 일처리마저 합리적으로 깔끔하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게다가 어른들 모시기를 끔찍하게 했기에 임기가 끝난 뒤에도 지금까지 안부를 주고받는 어른들이 많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있다.
김동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중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훌륭한 경력과 능력으로 지역과 나라를 위해 뭔가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법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거법은 해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더불어 디케 여신의 칼날도 대단히 날카로워졌다. 자유낙하로 떨어지는 머리카락까지 베는 명검이다.
권력은 불과 같아서 멀리 있으면 춥고 너무 가까이 가면 덴다는 말이 있다.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법 조항을 너무 무서워하면 소신있는 선거운동을 하기 힘들고 법에서 금지하는 사항에 너무 근접하면 칼에 찔리고 베인다. 선거철마다 수많은 범법자들이 생겨난다.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돈을 사취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비중의 범죄로 취급되는 것 같다.
이제 부여·청양 지역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4월 24일로 다가왔다. 며칠 남지 않았다.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포부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올바른 선거문화가 정착된다면 선거는 축제라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선거는 전쟁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제로섬 게임이다. 전쟁이 축제로 바뀌려면 패자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승자를 축하해주고 승자는 패자에게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 수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비틀거리고 위태로운 듯 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왔듯이 선거 풍토도 조금씩 발전되다 보면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은 갖고 있다. 출마자 모두의 건승을 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는 선거법의 칼날에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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