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임을 고려하면 거시경제지표로는 괜찮은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전보다 고달파졌다. 90년대 초반 20%대 육박하던 가계 저축률은 지난해 4.7%로 하락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 103%에서 지난해 134%로 증가했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산업연구원의 '한국경제의 가계ㆍ기업 간 소득 성장 불균형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 이전 한국경제 성장기(1975~97년)에는 가계 및 기업 소득이 각각 연평균 8.1%, 8.2%의 증가율을 기록했고, 기업의 성장과 가계소득이 '동반성장'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외환위기 이후 2000~2010년에는 기업 소득이 연평균 16.4%씩 증가했지만, 가계소득은 연평균 2.4% 늘어나는데 그쳤다. 특히,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부터 격차는 급속히 확대됐다. 기업과 가계간 불균형 탓에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득증가율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국민소득 대부분이 기업에 돌아갔다 해도, 사실상 30대 재벌에게 돌아갔다. 30대 재벌은 전체 상장기업에서 총자산 55%, 매출액 67%, 당기순이익 75%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중에서도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재벌이 대부분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9~2013년) 4대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재벌 중에 4대 재벌의 비중은 자산총액 49.6%에서 55.3%로, 매출액 비중은 49.6%에서 53.2%로 높아졌다. 총 순이익 비중도 70.5%에서 79.8%로 높아졌다. 재벌은 성장 과실을 대부분 가져가지만 내는 세금은 적다. 매출액 기준으로 30대 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은 지난해 평균 17.3%로 미국(28%)이나 일본(27%)에 비해 훨씬 낮다. 삼성전자의 실효법인세율은 16.3%였고, 현대자동차는 15.8%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부자감세' 정책에 대기업의 순이익은 늘어났지만, 세금은 오히려 줄었다. 물론 경제력집중과 불평등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느 나라든 양극화와 승자독식의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재벌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초국적 기업의 한국적 변종이다. 다만, 한국은 재벌이 통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로 힘을 발휘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이기에 더 심각한 상태다. 사람들은 시장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시장과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과 국가가 분리돼 균형을 이룬 구 자유주의 시대나 통하는 논리다.
신자유주의는 초국적 기업에 의해 시장과 국가가 동시에 조정되고 변형되는 체제다. 초국적 기업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법, 이데올로기 등 모든 영역에서 사회를 지배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는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와 다르게 자유시장에 전혀 충실하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인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콜린 크라우치가 저서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금융위기 이후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등장했다.
한국은 정부마다 재벌 개혁 혹은 경제민주화를 표방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오히려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재벌 체제는 승승장구했다.
또 크라우치는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글로벌 기업이 민주주의를 '텅 빈 껍데기'로 전락시키고, 국가 권력을 수중에 장악해 국가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초국적 기업은 권력을 동원하며 금융위기를 국가 재정위기로 전가했고, 공공지출과 복지의 축소를 강요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은 경제위기의 주범이자 초국적 기업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세계화를 더 강력하게 추진시켰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린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대안, 초국적 기업에 맞선 주체 형성이 중요하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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