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행정기관에 접수하는 신고의 밑바탕에는 바른 생활인들이 넘쳐나는 올바른 세상, 악에 대한 응징을 위해 불타오르는 정의감만 있는 게 아니다. 신고행위는 훌륭한 직업이자 돈벌이를 보장하는 소득수단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2001년 처음으로 교통위반을 신고하는 '카파라치'가 생겨난 이후 쓰레기 무단투기 현장을 신고하는 '쓰파라치', 일회용품 사용 '봉파라치', 택시 승차거부 행위 '택파라치', 현금영수증 발급거부 혹은 탈세 '세파라치', 수입 쇠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쇠파라치', 담배꽁초 무단투기 '꽁파라치', 미성년자에게 술ㆍ담배 판매 '청파라치' 등등. 최근에는 음주운전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주(酒)파라치'도 생겼고 맹활약중인 이들 60여 '파파라치 직종'을 나열하려면 호흡이 가쁘다.
원래 파파라치(paparazzi)는 유명 인사나 연예인의 사생활을 몰래 찍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을 일컫는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라는 뜻이다.
파파라치는 신고포상금 제도 때문에 생겨나고 그 제도로 먹고 산다.
현재 총 971개의 신고포상금제가 운영 중이며 포상금이 있는 곳에 파파라치가 있다. 세무당국은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전업 파파라치 500여명, 부업 파파라치를 합하면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쫓고 쫓기는 자들의 '공방전'도 볼만하다. 서울 강남일대 고소득 성형외과 의사들은 '세파라치'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비밀과외를 받고 몰래카메라를 찾아내는 고가의 탐지기도 구입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강사는 공교롭게도 파파라치 학원 강사들이다.
외국에서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거의 시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금융, 환경, 보건, 의료 등의 분야에서 규제 위반에 대한 신고 보상금 정도이며 아시아 국가는 부정부패 등에 대한 공익 신고자의 비밀은 지켜 주지만 영미권 국가들처럼 금전적 보상은 없다. 일본은 국내에 거주하는 불법외국인체류자를 신고하는 자에게 5만엔(한화69만원) 이하의 보상금을 주는 제도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나라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신고포상금 제도 확대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규 직종 창출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이러한 고상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면 행정체계와 행정력이 동남아시아나 일본만 못함을 자인하는 꼴이다.
오히려 포상금제도 운영이 일손을 더는 것이 아니라 파파라치 업무를 처리하는데 드는 행정력이 만만치 않은 역풍을 맞았다.
불법학원을 신고한 '학파라치' 김 모씨는 2억 9910만원의 최다 포상금 수령기록과 5246건의 신고 중 무려 4000여건의 잘못된 신고건수를 남기셨다. '잘못된 신고'란 포상금 지급 요건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조사받고 시달려야했던 학원장들이 어마어마하게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공무원들도 현장 확인, 관련기관 송치, 파파라치에게 처리결과 통보 등으로 오죽 고단했겠나 싶다. 재미있는(?) 것은 신고민원 접수 주체인 공무원들도 파파라치의 목표가 됐다는 점이다. 얼마 전 새롭게 등장한 '행파라치' 대학생이 인천시 종합민원실 소속 공무원들이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고 신고해 160만원을 받았다.
겉모양만 따지면 '좀 편해 보자고' 도입한 신고포상금 제도가 부메랑이 되어 제도 시행자이자 신고 접수자인 공무원들에게 돌아 온 것이다.
모든 국민은 선량하다는 전제와 분별력 있는 정부라면 '착한 문화'가 확산되고 정착될때까지 시스템을 비롯한 환경조성과 인내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고하면 돈 버는 나라'의 국격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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