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진짜 사나이' 가사다. 44년 전 논산훈련소에서 가장 먼저 배운 군가다. 제대할 때까지 천 번은 불렀으리라. 지금도 무심결에 흥얼거린다.
'사나이!' 소리만 들어도 뭉클하다. 그건 정의의 대명사다. 절제의 표상이다. 당당함의 상징이다. “사내는 도둑질 빼고는 다 배워라”는 속담도 있다. 폭 넓은 경험을 쌓으라는 거다. 도둑질만은 절대 안 된다는 거다.
사나이로 거듭나는 곳은 어딜까. 군대다. 박박 머리로 번뇌를 밀어내고, 훈련소에서 민간인 껍질 벗겨낸다. 제식훈련으로 절도를 배우고, 완전군장 행군으로 끈기를 기른다. 유격훈련으로 담력 키우며, 낮은 포복에서 낮아짐 배운다. 비상훈련으로 유비무환 터득하고, 하기식 땐 나라 사랑 다짐한다. 까만 밤 외곽 보초에서 자아를 발견하며, 별을 헤아리며 부모 사랑 깨우친다. 그뿐인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깨워주고, 체력단련 시켜주고 의식주 모두 공짜다. 36개월 군 생활은 '진짜 사나이'로 거듭남이었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230달러 정도. 춥고 배고팠다. 아궁이에 연탄불만 꺼지지 않아도 감지덕지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드물었다. 먹거리도 부실하다. 설과 추석 때만 겨우 고기 맛을 본다. 여러 식구가 한 방에서 칼잠을 자야한다.
가족 중 하나라도 군대를 가면 한시름 던다. 빠듯한 살림에 숨통 트인다. 쌀을 축내지 않는다. 등록금 걱정도 한시름 놓는다. 칼잠도 면한다. 군대는 인간 수련장이다. '군필'은 취직문턱의 통과증이다. 장가들 때도 '군대 갔다 왔냐'가 첫째 조건이었다. 군대는 귀양지가 아니다. 썩는 곳이 아니다. 젊음의 낭비가 아니다. 그곳은 진짜 사나이 제조창이다. 인생이 발효하는 곳이다. 젊음의 성숙이다. 제대한 지 40여 년 흘렀어도 군대 꿈을 꾼다. 자긍심의 발로다. 대한민국 국민임에 어깨가 으쓱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40여 년 전보다 경제력은 무려 100배 커졌다. 배고픔 잊은 지 오래다. 아니, 넘쳐서 문제다. 추위도 모른다. 주거공간도 1인당 6평에 달한다. 칼잠이 뭔지도 모른다. 뒹굴면서 잔다. 생활에 편리한 온갖 가전제품이 가득하다. 편하게 산다. 군대는 거추장스런 액세서리로 여긴다.
새 정부 들어서니 더 꼴불견이다. 청와대 고위직은 물론, 장관에 내정된 사람들을 보라. 본인과 자녀에서 제대로 국방의무를 지킨 자 별로 없다. 아니, 적법하게 병역면제 받았다고 강변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장군 출신도 거기서 거기다. 뻔뻔 극치다. 무려 38일 간이나 버티다 사퇴한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어떠한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술(?) 달인이다. 17차례 부동산 투자에서 단 두 번만 재미를 봤다나. 청문회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무기중개상에서 고문료도 받았다나. 문제투성이다. 의혹이 33가지나 된단다. '장군'인지, '장꾼'인지 헷갈린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64만 대군을 통솔하겠다니…? 과연, 한반도를 지키는데 '영(令)'이 서겠는가! 뭐라던가? “문제는 있으나, 능력은 있다”고…! 토를 달지나 말지~. 우째, 이런 궤변이…?
그뿐인가. 북에서는 연일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으름장 놓는다. 그런 판에 태릉 골프장에서 장군 십여 명이 한가로이 '굿샷' '나이스샷'을 외쳤다니…. 골프가 체력단련이요 전투력 증강이라나? 송아지도 하품할 일이다. 대한민국 남아의 자긍심이 뭔가. '진짜 사나이'다. 그건 한국을 일으킨 원동력이다. 삶의 대들보다. 인생 버팀목이다. 그게 하루아침에 허물어진다. 억장이 무너진다. 군대에서 진짜 사나이를 수없이 불렀건만…. '가짜 사나이' 타령이 웬 일인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머리를 잘 굴려/ 너와 나 눈치 살피며/ 꼼수에 살았다/ 위장과 투기 속에/ 부풀린 재산아/ 빌딩 위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청기와집 등에 지고/ 장관 꿈 이룬다.♪'
숨 막힌다. 절망이다. “국민행복ㆍ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진짜, 대한민국 국민 못 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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