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
1604년 조선왕조실록은 “선조 37년 10월 13일 저녁 8시경 목성보다 작은 적황색의 객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으로 시작해 이듬해 4월 23일까지 약 130여 회의 관측을 기록하고 있다. 이 별은 유럽에서는 케플러 초신성(SN1604)으로 알려졌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 것인데, 죽는 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며 폭발하기 때문에 그 밝기가 엄청나고 새로 생긴 별이라 해서 신성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밝던 초신성이 점점 더 어두워져 눈에 보이지 않게 돼 우리나라에선 객성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느 면에선 더 과학적인 셈이다.
초신성 폭발은 보통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밝기의 모양으로 형태를 분류한다. 케플러의 기록에는 발견 후 20~80일 사이의 중요한 기록이 없어서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기간의 기록이 매우 자세하게 나와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케플러의 기록과 결합하면 완벽한 그 형태를 알아낼 수 있다. 존경하는 어느 노 교수는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동서양간 '국제공동연구'라고 표현했다.
케플러가 갈릴레오와 쌍벽을 이루던 동시대 과학자였으니 우리 조상 들의 당대 과학적 수준도 이미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약 400여 년이 지난 서기 2013년 오늘 대한민국의 후대 과학자들이 과학벨트에 중이온가속기 '라온'을 구축하고 있다. 라온이 건설되면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할 뿐 아니라, 다른 원소들과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초신성 폭발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정말로 만들어지는지를 밝힐 수 있게 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도 밝힐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의 원소들과 성질이 같으면서 질량이 다른 원소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동위원소는 약 3000종에 이르며 전체 동위원소의 수는 70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초기에는 원자로를 통해서 발견됐지만 최근에는 가속기를 통한 발견이 주류를 이룬다. 발견한 동위원소의 수로 볼 때 금, 은, 동메달은 미국, 독일, 영국 순이고 이웃 나라인 일본은 7위, 중국은 12위에 랭크돼 있다. 우리나라는 3000여 개 중에 아직 하나의 동위원소도 발견하지 못했다.
라온의 건설은 우리나라를 동위원소 발견 상위권 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주와 생명을 이루는 다양한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인류 본연의 질문에 답을 찾는 과학적인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어 선대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 에너지부에서 2010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약 3만대의 크고 작은 입자가속기가 있으며, 가속기 시장은 약 35억 달러 이상, 가속기 빔을 이용해 생산, 처리, 검사되는 상품은 매년 약 5000억 달러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많은 가속기가 치료 또는 진단을 위한 의료용 가속기와 이온주입 등 산업용 가속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전체 1% 에도 못 미치는 라온과 같은 기초과학 연구용 가속기가 가속기 기술의 개발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자료를 보더라도 가속기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국내가속기 기술이 아직 미약할 뿐 아니라 이를 끌고 갈 가속기 분야 연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라온과 같이 순수한 기초과학연구를 위한 투자가 국내가속기 기술 개발과 연구인력 양성을 자연스럽게 선도하게 될 것이다. 현대 문명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연구의 선도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자연스럽게 첨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경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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