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청춘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50대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는 노인들을 종종 방송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영원한 청춘'을 위해 여전히 러닝머신 위를 뛰거나 생활전선에서 물러나지 않고 바쁘게 살아간다. 언뜻보면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세월을 거스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턱뼈는 줄어들어 틀니를 해야 하고 조금만 걸어도 관절마다 소리가 나기 일쑤다. 눈앞에 놓인 인생의 단계를 가장 만족스럽게 보냈던 철학자들의 가르침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이 발간됐다.
저자 대니얼 클라인은 노년기를 지나 '초고령기'를 맞이할 생각을 하면 두렵다고 고백한다.
그는 광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려는 세태를 보면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인생의 황혼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죽음을 아주 먼 일이거나 남의 일처럼 여기며 살다가 갑자기 망각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초고령기'를 맞이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 책은 일상사와 정치의 감옥에서 벗어날 때 얻을 수 있는 이득, 지루함과 권태에서 벗어나는 법, 성적 충동과 성적 노스탤지어를 다루는 기술, 그리고 죽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관을 꼼꼼히 따진다.
한편, '초고령기'에 이르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게 마련이지만 '초고령기'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라는 충고도 담겨 있다. 즐겁지 않으면 바르게도 살 수 없고, 능력 밖의 것들을 내려놓고 깨달음에만 집중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통찰력이 담긴 이 명상록에서 저자는 “제대로 노년을 보내는 방법은 '영원한 청춘'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숨 가쁘게 야망을 품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절망감에 휩싸여 지내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확실히 알고 그 길을 찾는 것은 어떤 연령대에든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사색할수록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사색하고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때문이다. 저자를 따라 위대한 현자들의 섬을 여행하다 보면 인생의 단계마다 각기 다른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75세의 유쾌한 노학자 대니얼 클라인은 영원한 청춘을 꿈꾸며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현자들의 섬에서 찾아낸 '청춘 이후의 삶과 시간의 지혜'를 전해준다.
저자는 인공치아 시술 대신 그리스의 이드라 섬으로 여행을 떠나 기쁨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나이가 들어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 에피쿠로스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세네카, 키르케고르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카뮈와 사르트르,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학적 조언들을 아우르며 놓치기엔 아까운 인생의 마지막 선물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고, 사라지는 기쁨을 음미하며,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평범함 속에서도 우주를 볼 수 있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절정기라는 점을 전해준다.
대니얼 클라인 저/김유신 역/책읽는 수요일/272쪽/1만3000원.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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