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화 이지도시건축사무소장 |
또 건축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나 조건을 조정하고 구상한 건축 조형을 구체화하는 작업으로서, 문화와 기술을 동시에 수용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창조적이고 전문화된 직업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건축설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직접적으로 하기 곤란한 일(고도로 지적인 내용을 수반하는 전문적인 업무) 가운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위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정부 부처 산하에 직접적으로 이를 대행하기 위한 전문가 제도를 둔다. 대표적인 것이 변호사와 의사, 약사, 회계사, 건축사 등이다. 대개 건축사를 건축 인·허가를 해결하는 브로커(?) 또는 건설 기술자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프로젝트의 기획에서부터 설계, 시공 등 건축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전문가다.
이러한 건축사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사 예비시험에 합격해야 된다. 또 5년 실무경력을 거친 다음,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건축사가 될 수 있다. 이같이 건축사 대부분은 오랜 시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련과 열정으로 만들어진다. 영화에서처럼 화려하고 폼나는 그런 직업이 아니다.
반대로, 건축사가 된 후에도 낮은 설계비 탓에 더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건축계에서는 건축사들 생존위협을 경제적 침체에 따르는 물량감소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에 경기가 회복되면 위협이 사라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경제침체가 위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낮은 설계비와 제 살을 깎는 '덤핑', 이것이 원인이다. 부동산 경기와 건설경기 침체는 건축 시장에 과도한 경쟁을 유발시켰고, 건축 설계비의 출혈경쟁을 촉진했다. 이러한 이유로 건축사들 생존을 위협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건축사 집단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주나 사용자의 피해로 나타날 것이며, 건축을 하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건축주는 크게 두 부류로 구별된다.
하나는 이름난 건축가를 찾아 큰 비용을 지급하고 건축 설계를 부탁하는 부류다. 하지만, 이 유형의 건축 설계는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주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경제적이고 시간적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아주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부류다. 이들은 건축 설계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자의적이고 비용 발생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허가에 필요한 몇 장의 도면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설계비를 계산할 때 평당 설계비로 계산한다. 편의상 그렇게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격의 산정 방식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예전에는 '보수 요율' 이라는 것이 있어 건축의 종류와 작업의 난이도 등으로 설계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은 '보수 요율'이 공정거래에 반하는 카르텔로 규정돼 사라졌고, 건축설계비는 최소한의 비용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 설계비는 건축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물론 건축설계비가 공산품처럼 일정한 금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비용은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틀과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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