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연합뉴스 |
손흥민(21ㆍ함부르크ㆍ사진)이 몸을 푸는 장면이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형 스크린에 잡힐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졌다.
축구 국가대표팀 내에서 손흥민의 입지는 조연에 가깝다.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주연급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특히 올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펼쳐 유럽의 잘 나가는 클럽들이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하면서 기대치가 더욱 높아졌다.
기대가 커질수록 그를 짓누르는 부담도 커졌다. 클럽에서는 잘하지만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부진하다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지난 18일 파주 NFC에 소집될 때부터 부담감을 토로했다. “나는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 나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손흥민은 1-1로 팽팽하던 후반 35분쯤 이근호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손흥민은 “10분을 남겨두고 투입될 것이라고는 생각못했다”며 당시 심정을 전했다.
손흥민이 교체 준비를 위해 트레이닝복을 벗는 순간 그 장면을 포착한 관중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하지만 답답하기만 한 공격의 활로를 그가 뚫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올 시즌 독일에서 빛을 발했던 시원시원한 슈팅이나 움직임을 선보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더욱 강해진 '킬러 본능'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손흥민은 “왠지 그 쪽으로 공이 올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동국이 때린 슛은 골대를 맞고 떨어졌고 때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손흥민의 발에서 결승골이 터졌다.
감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심판은 종료 휘슬을 불었다. 축구에는 없는 '버저비터'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적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모든 관심이 손흥민에게 쏠렸다. 'HJ'의 공개 여부로 관심을 끌었던 기성용이 말없이 믹스트존을 지나갔지만 취재진은 아쉬워 할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손흥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이처럼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손흥민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듯한 표정이었다. 대표팀의 부진을 한방에 날리는 결승골,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했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도 구했다.
손흥민은 “대표팀 부진 얘기가 계속 나와서 많이 위축됐고 자신감도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오늘 경기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오늘을 계기로 다음에 소집될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의 마음도 얻었다. 그동안 최강희 감독은 손흥민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손흥민에게 충분한 기회를 줘서 재능을 뽐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축구계의 반응에 최강희 감독은 지난 달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줬지만 활약은 저조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10분의 기적'에 최강희 감독도 활짝 웃었다.
6월로 예정된 최종예선 3연전에서 손흥민이 주전으로 도약할 지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쟁쟁한 선배들이 많다. 하지만 조커로 출전한다 해도 손흥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그는 이제 당당히 대표팀의 주연이 됐다.
2013년은 손흥민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일단 분데스리가에서 시즌 두자릿수 득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월9일 도르트문트전에서 8, 9호 골을 터뜨린 후 한달 넘도록 골 침묵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표팀 활약이 새로운 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잭팟'을 터뜨리며 함부르크와 재계약을 할 지 아니면 유럽의 명문 클럽으로 이적하게 될 지도 관심사다. 온통 장밋빛 미래다. 노력과 집중력으로 만든 10분의 기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노컷뉴스/중도일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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