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액은 향후 10년간 3개교에 매년 500만원씩 지원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또 탄방초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육 소외 계층을 보듬고 있다.
사업가로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지만, 교육 발전을 위해 사재를 털거나 꾸준한 관심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그만큼 김 회장이 교육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연한 기회로 교육기부 릴레이를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2008년께 우연한 기회에 탄방초에 결식아동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매년 100만원 씩 급식지원비로 기부하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이 학교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이같은 인연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교육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사업 수익 일부를 어려운 학생과 또 열악한 학교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교육을 살찌우면 우리나라 발전으로 이어진다. 여러 사람이 교육 기부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교육기부 릴레이는 지역사회 봉사로도 이어졌다. 그는 탄방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물론 서구 생활체육회 부회장, 서구 민주평통 수석부회장, 탄방동 복지만두레 회장 등을 역임했거나 현재 맡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과 스킨십을 넓혀가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또 대전사랑시민협의회에 가입된 봉사단체인 한마음봉사회 일원으로 활동하며 연 1회 서구 곳곳을 찾아가며 소외계층을 위한 바자회 등 각종 행사에 동참하고 있는 그다.
김 회장을 '교육기부 천사', '성공한 사업가'로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닭갈비다. 그는 “한 마디로 닭갈비는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며 “공무원일 때는 일과 조직에 예속돼 있었지만, 닭갈비 사업이 김보영이라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탄생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출신인 그는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맨땅에 헤딩했다”고 농을 던졌다. 우리나라 닭갈비의 본고장은 강원도 춘천이기 때문에 대전에서 이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대전에는 지인도 기반도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김 회장의 줄기찬 노력에 대전에서의 그의 인생 2막은 빛을 봤다.
김 회장은 “2004년 경찰관 재직 시절 KTX 시승단 일원으로 대전을 찾게 됐는데 우연히 탄방동을 지나게 됐다”며 “평소 닭갈비 사업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곳에서라면 닭갈비 맛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홀로 대전에 원룸을 얻어 생활하면서 그의 도전은 시작됐다.
닭 요리에 대한 서적을 섭렵하다시피 하고 대전의 맛집을 모두 찾아다니며 대전 사람들의 입맛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기를 1년여, 5.5 닭갈비의 비법인 양념을 개발, 대전 시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탄방동에서 사업 기초를 닦고서 2007년 프랜차이즈를 본격 시작했다. 현재는 대전,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전주 등에 100여 개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김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기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돈이 많은 부자도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데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욱 활성화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교육 기부는 물론 사회에서 소외되고 홀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보영 회장은 누구…
1956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80년 경찰공무원 임용, 2004년 경찰공무원 퇴직, 2004년 5월 5ㆍ5 닭갈비 본점 창업(서구 탄방동), 2007년 3월 법인 설립 및 프랜차이즈 사업 개시, 서구 민주평화통일정책위원회 수석부회장, 서구 생활체육회 부회장, 서구 탄방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대담=오주영 교육체육부장
정리=강제일ㆍ영상=금상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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