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이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첫 번째는 영원한 패자가 된 여우 이야기다. 굶주린 여우는 높이 매달린 포도를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자 심한 패배감을 느꼈다. 죽을힘을 다해 다시 손을 뻗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는 고파오고, 타고 올라갈 사다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포도는 왜 저리 높이 매달려 있는 거야? 사다리는 왜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 거지?” 여우는 포도 탓 사다리 탓을 하며 넝쿨 아래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마침내 여우는 죽어도 포도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한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라는 뼈저린 아픔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주 신포도로군” 여우는 절망했다. ‘포도는 처음부터 나 따위가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것이었어’ 여우는 기진맥진해 그 자리를 떠났다. 킬링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말라죽게 하는’것을 선택한 ‘여우와 포도’ 이야기다.
두 번째는 나이롱환자가 된 여우 이야기다. 배고픈 여우는 넝쿨에 매달린 먹음직스런 포도송이를 봤다.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 힘껏 점프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면서도 손에 닿지 않았다. 여우는 실망스러웠다. 사다리를 찾아보았지만 그마저 없자 점점 난감해졌다. 여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속상해 죽겠네. 정말 먹고 싶은데, 그냥 갈 수도 없고…. 어쩌지?’ 고픈 배를 움켜잡고 넝쿨 아래서 한참을 힘없이 주저앉아 있던 여우는 포도송이를 올려다봤다. 포도는 풍선처럼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가 정말로 손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신포도로군” 여우는 속으로 자신을 설득하고 달랬다. ‘저 포도는 익지 않아서 시금털털할 거야. 맛도 없고 먹어도 배부르지도 않을 테니 힘들게 딸 필요 없어. 게다가 난 지금 다리가 너무 아파서 높이 점프할 수도 없는걸.’ 여우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불편했던 마음을 치유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힐링‘치유’를 선택한 ‘여우와 포도’ 이야기다.
세 번째는 거짓 사도가 된 여우 이야기다. 어느 날 여우는 길을 가다가 높은 넝쿨받침 위로 정연히 매달린 포도송이를 봤다. 며칠을 굶은 터라 포도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듭 뛰어 올라보지만 손끝은 포도에서 점점 멀어졌다. 산 너머 해는 지고, 사다리는 없고, 힘은 빠졌다. 그 때 어디선가 어슴푸레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여우는 ‘신의 부르심’으로 확신하고, 포도로 허기를 채우려 했던 마음을 단숨에 단념해 버렸다. ‘포도가 높이 달려 있는 것도, 사다리가 없는 것도, 때마침 해가 지는 것도, 그리고 내 힘이 빠진 것도 모두 신의 뜻일 거야’ 여우는 금세 포도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단정했다. 그후 포도송이를 올려다봐도 조금도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아주 신포도로군” 여우는 의기양양하게 말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포도는 신이 내게 주신 음식이 아니야. 나는 성심을 다해 신이 내게 주신 음식을 찾아야 해. 그것만이 유일한 축복이야.’ 여우는 거짓 소명의식을 갖고 신이 주신 음식을 찾아 그 자리를 떠났다. 콜링‘소명의식’, ‘천직’, ‘직업’을 선택한 ‘여우와 포도’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어떤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일까? 이제는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피로사회’등의 저자인 한병철 교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달콤한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킬링, 힐링, 콜링이란 불만으로 인한 절망, 자기 합리화로 찾은 치유, 거짓 소명의식이 아니다. 변화는 마음에 흡족하도록 정성을 다해 분노하고 죽살이쳐 바꾸려고 노력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이 처한 불합리와 괴로움에 적극적으로 분노할 줄 알고 그 원인을 찾아 바꾸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지금부터 써 나갈 ‘여우와 포도’ 이야기인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