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힝 소재 막스플랑크 플라즈마물리연구소 정문에는 핵융합장치중 하나인 스텔러레이터를 구성하는 초전도 자석 코일이 연구소를 상징하고 있다. |
6. 일본·독일 연구소 지원과 운영실태
지난해 일본은 18번째 노벨상 수상자 배출로 또 한 번 들썩였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대 교수가 선정되면서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노벨상 수상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기관이 있다면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일 것이다. 야마나카 시야 교수는 2003~2009년 JST가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진흥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CREST(Core Research for Evolutional S&T)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JST 마사시 후루카와 박사는 “CREST 사업을 통해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노벨상을 받게 돼 연구지원 기관인 JST가 한몫을 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늘고 긴 연구지원=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뿐 아니다. 마사시 후루카와 박사는 그동안 JST가 CREST 사업을 통해 여러 연구자가 노벨상에 근접해 있다는 점을 톰슨 로이터 인용상을 거론했다.
톰슨 로이터 인용상 2002년에 발표가 정례화돼 지난해까지 세계에서 이 상을 받은 연구자 약 180명 중 27명이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마사시 후루카와 박사는 “톰슨 로이터 인용상 수상자 리스트에 일본인 연구자가 16명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9명이 CREST 사업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이며, 야마나카 교수도 포함돼 있었다”는 말로 이들 가운데 앞으로도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했다.
1980년대 일본은 주요 선진국으로 등장하면서 해외로부터의 기술도입으로는 기술혁신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기초과학분야 지원에 눈을 돌렸다. 1981년 창조적인 연구, 특히 기초적인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기초 연구에 집중지원하는 창조과학기술추진사업(이하ERATO)을 시작, 일본 내의 기초과학연구의 새로운 연구조류를 이끌었다.
1991년에는 독창적 개인연구육성사업인 사키가케, 5년 뒤인 1996년에는 전략적 창조연구사업인 CREST를 시작하는 등 일본의 창의적 연구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또 CREST와 ERATO사업중 뛰어난 연구성과가 기대되고 발전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지속지원하는 발전연구 프로그램인 SORST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기간이 5년인 CREST와 ERATO 사업 가운데 발전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종전 연구비의 약 반액 정도, 기간은 2~5년 동안 지원을 통해 연구를 마무리하거나 좀 더 발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5년이란 지원기간에 정확하게 맞춰, 연구를 완벽하게 끝내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SORST는 연구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연구의 연착륙 내지는 연구의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국내 연구지원제도도 연구기간이 끝났다고 무 자르듯 연구비지원을 중단하는 것보다 연구가 마무리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6년간 국가과학자 사업을 마친 이서구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연구지원사업의 연착륙 내지는 출구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일본은 기초과학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진연구자 지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원하고 있다.
CREST사업 지원을 받았던 도쿄대 후지타마코토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최소한의 연구비를 보장, 연구자들이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같은 번호 복권에 집중투자하는 것보다 여러 번호에 조금씩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밖에 일본이 기초과학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지난 3년 민주당이 집권한 시기를 제외한 기간을 자민당이 집권, 과학정책의 기조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기초과학발전에 뒷받침이 됐다.
▲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화학 물리연구소. |
2차 대전 당시 나치를 추종한 교수와 반대했던 교수, 어쩔 수 없이 동원돼야 했던 학자 등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2차 대전 이후 교수나 연구자들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정치로부터 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는데 밑바탕이 됐다.
연구 자율성 보장을 바탕으로 80개에 이르는 막스플랑크 연구소들은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예산지원과 연구현장의 '야전 사령관'으로 불리는 각 연구소 소장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자율성이 보장은 엄격한 평가시스템 아래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에른 뮌헨 가르힝에 있는 막스플랑크 플라즈마물리연구소도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가르힝에는 막스플랑크 플라스마물리 연구소 이외에도 뮌헨공대, 막스플랑크 천체물리학 연구소, 막스플랑크양자공학연구소 등이 몰려 있다.
막스플랑크 플라스마연구소 영년직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유종하박사는 가르힝에 있는 이들 연구소와 대학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7~8명 배출했다고 소개했다. 연구소의 재정적 독립을 보장하고 국가와 기업의 행정적 간섭을 배제, 연구의 자율을 보장하고 있지만, 예산과 학술적 평가에서는 엄격하지만, 공정하게 진행된다.
예산은 연방정부나 주 정부관리가 필요할 예산평가위원회에 참여해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평가한다. 학술평가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연구분야별 석학들이 참여, 연구소의 연구방향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 일본의 JST건물 전경 |
유정하 박사는 “동료평가는 냉정하게 진행된다. 공적영역과 사적인 부분은 철저하게 배제된다”며 “신뢰를 바탕으로 야전사령관인 소장의 자율적인 연구소운영에 대해 믿고 맡기는 것이 특징이다. 주 정부와 연방정부의 세금으로 연구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강한 책임감으로 인해 연구의 수월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율을 보장하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하는 객관적인 평가 이외도 새로운 인재의 끊임없는 유입도 막스플랑크의 힘이다.
드레스덴 소재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연구소에서 만난 이수영 박사는 연구자에게 최적의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막스플랑크의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다 펠로십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이수영 박사는 “170여 명이 연구하고 있는 이곳 연구소의 절반가량은 외국 연구원들이다”며 "관련분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등 지식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실제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연구소에서는 1년에 20차례가량 세계적인 석학을 초청해 콘퍼런스를 연다. 석학들을 통해 관련분야 세계적인 연구 흐름과 자신의 연구수준 등을 콘퍼런스를 통해 한눈에 가늠할 수 있고 연구방향을 설정하는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수영 박사는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 흐름과 정보를 알고자 굳이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학회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서 세계 석학의 연구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연구자들끼리 관심분야 연구에 대해 토론하는 등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요람이다”라고 설명했다. <끝>
권은남 기자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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