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할머니 한 분이 묘비를 쓰다듬다가 한 번 꼭 품에 안고 말씀하신다. “아이구, 불쌍한 내 손자” 할머니의 입가엔 탄식이 흐른다. 옥이야 금이야 예뻐했을 손자는 할머니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할머니의 눈가에는 손자가 태어나 처음 안던 순간부터 군대에 입대하던 순간까지 떠오르는 듯 눈물이 흐른다.
어느 전우는 못다 한 말을 편지에 적고 크리스털패에 넣어 묘비 상석에 붙여놓았다.
'풋풋한 가을 향기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아름답게 단풍들이 수놓는 2008년 10월, 유난히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훈련소에 입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관 4년차가 되어'라며 흘러간 시간을 되돌아본다.
미안한 마음도 적혀 있다.
'대전이라는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부산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신경 써서 찾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구려.'
그러나 분노의 마음도 쓰여 있다. '자네가 사랑한 이 바다를, 이 국가를 북의 김정은 정권은 아직도 시시각각으로 노리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자네와 천안함 용사들 우리 순국선열들이 지켜온 이 해군을 해적이라 부르는 국민도 있다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속에 천불이 끓는다네.'
마지막으로 굳건한 다짐도 적혀 있다.
'자네 이런 소식을 들어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걱정 마시게. 자네가 목숨 걸고 지켜온 우리의 바다, 우리의 명예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우리 해군이, 우리 국군이, 우리 국가가 최선을 다해 지키겠네. 먼 하늘에서 응원하고 기도해 줄 거지. 보고 싶다. 사랑하는 내 동기야.'
오늘 비에 젖은 천안함 용사묘역은 스산한 추위로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느 천안함 용사의 사진 위로 빗물이 눈물처럼 맺혀 있다. 차마 흘려 보낼 수 없는 응어리진 한처럼 그 어여쁜 눈가에 눈물처럼 고여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참으로 예쁘고 젊은 청춘이다.
천안함 용사 추모 3주기를 맞아, 천안함 46용사 묘역은 유가족의 손길로 새 조화와 새 국화 한 송이로 몸단장을 새로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손길이 별로 보이지 않아 허전했다.
하늘나라로 떠나간 고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생전에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고인이 좋아했을 과자와 음료수, 차가운 비석 앞에 고인을 기릴 수 있는 생전 사진뿐이다.
아들이 생전에 차던 시계를 차고 아들의 몸을 닦듯 매일 묘비를 닦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에 잔주름이 더 늘었다.
말없이 아들의 묘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서글픔이 깊어진다.
천안함 용사 추모 1주기만 해도 잔디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맨땅을 드러낼 정도로 전국의 방문객이 파도처럼 밀려왔는데 지금은 아직 떠나지 못한 겨울바람만이 텅 빈 묘역을 채우고 있다.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현충원에서는 이분들을 위해 시민들과 함께 원내를 걷고 천안함용사 묘역에 들러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지난 23일에는 천안함용사 3주기 추모 걷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6일은 천안함 3주기 행사가 진행된다. 한 손에는 국화를 한 손에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원내 길을 걸으며 천안함 용사 묘역에 들러 참배하자. 천안함 용사 추모 3주기를 맞아, 묘역 표지석 위에 헌화한 국화가 넘쳐나고 각 묘비에 수많은 태극기가 넘실거리게 하자. 그리하여 하늘나라에 있는 천안함 용사들이 값진 희생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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