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
신문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법원장이나 판사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법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원한다면 재판 과정이나 사법행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서 사법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판사가 재판을 어떻게 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판사의 고충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사법부의 노력들이 쌓인 결과다.
재판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혹시라도 오래 전에 재판을 받았거나 재판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던 분이라면 지금 다시 법정을 방청해 볼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아마도 재판이 달라진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만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러한 노력들이 쌓여 과연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졌을까? 물론 재판이란 것이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패자로부터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친절하게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 하더라도 패소한 당사자는 선뜻 법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법정에서 친절하게 대하면 자신이 승소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판결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온갖 상상과 의심을 하는 당사자들을 자주 만난다.
또한 재판은 대부분 꽁꽁 숨겨둔 사실을 밝히는 과정이고 판사로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모든 것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질문 내용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참여재판이나 모니터, 자원봉사 등 여러 방식으로 재판이나 사법행정에 직접 참여했던 분들의 법원에 대한 신뢰는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확실히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쌓은 신뢰도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 한편, 막말 판사에 대한 기사 한 줄이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영화나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면 오히려 비난의 강도만 높아진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원을 찾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영화나 뉴스에 비춰지는 모습을 실제 법원의 모습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만큼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고 판사들에게 들이대는 윤리적 잣대가 엄격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제도나 조직 중에서 완벽한 것이 있을까?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판사라고 해서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법부가 잘못을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일반화되고 그로 인해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가 한 순간에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재판의 생명은 신뢰와 권위다.
사법부가 마지막 보루라는 말을 뒤집으면 사법부가 신뢰와 권위를 잃게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되돌아온다는 말과 같다.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분명 사법부에도 어두운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밝은 곳이 훨씬 더 많다고 믿는다. 어두운 곳이 전혀 없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판사들은 비록 자존심이 부러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두운 곳이 사라지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보내주는 신뢰와 권위가 사법부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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