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구 큐레이터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우며 쌓아 놓은 눈과 응달 곳곳의 잔설로 바뀌는 계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하고 있던 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주변도 이제는 봄빛이 완연하다. 광장 주차장이 가득한 것을 보니 수목원과 미술관을 찾아 이른 봄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이 벌써 많은 모양이다.
미술관에서는 두 미술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하나는 작고 20주기를 맞은 이남규의 회고전이고, 다른 하나는 칠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 최영근전으로 역시 회고전 형식의 큰 규모다.
이남규는 유성에서 태어나 회화를 공부하고 공주사범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개성 넘치는 추상회화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다. 특히 그는 스테인드글라스(유리그림)를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정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럽에서 중세 이래, 화려하고 밝은 색유리를 통해 흘러드는 빛으로 성당 내부를 신성한 빛의 공간으로 만들어, 종교의 깊은 의미와 신도들의 신심을 일깨우던 장식화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던 그는 깊은 신심을 담아 전국 곳곳의 성당에 이러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었다. 대흥동성당에도 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더불어 성인들의 부조상(浮彫像)이 남아 있다.
최영근은 나전칠기를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미학을 담은 예술의 하나로 세우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온 작가다. 나전칠기라 하면 가구의 표면이나 함을 장식하는 공예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수수한 소박미, 또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자연미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그러한 미감 뿐 아니라, 고려불화나 나전칠기에서 보듯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솜씨에 의한 완성도 높은 미감을 가진 예술품도 있음에 주목하였다. 그는 그러한 나전칠기를 전통을 이으면서도 단지 실용품의 표면을 장식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한국적인 예술성을 가진 현대미술품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 역시 청양 생으로 미술을 공부한 후, 대전을 터전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가운데 자신의 분야를 대표하는 중견을 넘어선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이 나란히 선 뜰을 걸으며 봄빛을 받아 보았다. 엑스포가 끝난 후 황량하게 남아 있던 아스팔트 광장에 청소년수련원과 함께 덩그러니 세워졌던 미술관이다. 이후 시나브로 예술의 전당이, 이응노미술관이, 천연기념물센터와 수목원이 자리를 잡았다. 갑천 다리를 건너면 엑스포공원과 과학관이 있고 방송국 사옥도 어느새 이곳에 모여들었으니, 만년동 인근은 가히 대전 문화예술은 물론 시민 여가활동의 중심이라 할 만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1998년 봄에 개관한 시립미술관은 어느새 십오 년의 연륜을 쌓았다. 건물에는 세월의 때가 앉기 시작했고 주변의 나무들도 그사이 많이 자랐다. 미술관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는 큰 공간이 만들어져 그것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미술관 관람이 시민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고 그곳에서 지역의 예술문화를 생각한다는 것도 그러한 의미 가운데 하나다. 이 봄 미술관 나들이는 내게도 지역미술을 생각해보고 더불어 몇 년 후 시립미술관이 성년으로 자라 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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