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
맞벌이하는 필자의 가정 형편상 퇴근이 늦어지면 학습 준비물을 제때 준비해 줄 수 없는 이유에서다. 매년 이 시기에는 준비해야 하는 학습 준비물의 종류와 양이 많아 분주했던 기억밖에 없다.
우리 가정은 필자나 아내가 일을 마치고 마트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소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면 동네 문구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시간 마트의 문구 코너는 비슷한 또래의 부모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 학기가 시작한 첫날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그만큼 많은 학교가 학습 준비물을 학부모들에게 부담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도 사야 하는 학습 준비물이 많았다. 다음날, 두 아이의 학습 준비물이 든 봉투의 무게가 어른인 필자가 들기에도 묵직했다. 필자는 아이들의 학교까지 학습 준비물이 든 봉투를 들어줬다.
새 학기의 둘째 날 등굣길은 발걸음이 가벼워야 하지만, 학습 준비물에 무거운 봉투를 든 아이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문뜩, 교육 예산에 있는 '학습준비물구입비'가 떠올랐다. 또 5~6년 전의 일이나 지인으로부터 학교장의 재량으로 학교에서 학습준비물을 구매해 학부모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학교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에 대전시교육청이 올해 초등학생 한 명당 얼마의 학습준비물구입비를 편성했는지 확인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부끄러운 자료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발표한 전국 시·도별 학습준비물 구입비 명세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대전시의 학습준비물 구입비가 전국 꼴찌였다. 전국 평균이 3만79원이었지만, 대전시가 지원한 학습준비물 구입비는 2만 2324원에 불과했다. 전라북도는 5만3728원을 지원했다. 문제는 2011년 전국 교육청별 학습준비물 구입비를 다른 국회의원이 비교했는데, 대전시가 역시 꼴찌를 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대전시교육청은 일선 초등학교에 '2013학년도 학교회계 예산편성 및 집행지침'을 내려 학생 1인당 3만원 이상의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했다. 하지만, 연간 학생 1인당 필요한 학습준비물 구입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앞서 다른 지역의 예를 들었지만, 겨우 작년 전국 평균에 근접한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새 학기에 필자의 두 아이가 학습준비물을 구입하는데 6만원 상당의 비용을 지출했다. 벌써 시 교육청이 지침을 통해 편성한 연간 학습준비물 구입비용을 초과하는 비용을 지출한 셈이다.
학습준비물 구입비를 보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6년 전에 벌인 '중학교 학교 운영지원비 폐지 운동'의 기억이 났다.
과거 대전에서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임에도 '기성회비'와 '육성회비'라는 명목으로 징수했던 학교운영지원비를 버젓이 징수하고 있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장했던 것은 무상교육이면 무상교육의 취지에 맞게 학교운영지원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대전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학교운영지원비를 전액 지원하며 실질적으로 폐지했다. 뿐만 아니라 그해 여름 헌법재판소도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상의무교육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연한 일이다.
무상의무교육을 천명하고, 교육과 관련해 지출되는 비용을 수익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그 취지에 어긋난다.
학교운영지원비 전액을 교육재정에서 부담하듯, 학습준비물 구입비용도 교육 재정에서 전액 부담해야 한다.
학습준비물 구매예산은 대전시교육청이 공교육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대전시교육청은 학습준비물 구매예산을 하루빨리 현실화해야 한다. 새 학기마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학습준비물을 사려고 늦은 시간 마트에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이 없어지길 기대한다. 학부모들이 부담없이 자녀의 새 학년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길 기대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