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연 법률사무소 청리 路 대표변호사 |
숙종 때에 서인이 남인과의 몇 차례 살육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그리되자 서인 눈에는 남인계열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눈에 들어왔다. 직전에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었다. 그 아들 세자가 즉위를 하면 복수를 하지 않겠는가. 그 옛날 어머니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전을 펼친 연산군 생각도 났다. 마침 서인 계열 숙빈 최씨의 소생인 연잉군(영조)도 있었다.
서인 주류인 노론들은 훗날을 위해 세자를 자파 연잉군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비주류인 소론들은 어미 잃은 세자가 불쌍하다며 세자 보호를 자임했다. 서인, 남인간의 싸움이 얼마 전까지 같은 편이었던 노론, 소론의 '인육전'으로 짧은 시간에 바뀌었다. 장희빈이라면 치를 떠는 숙종도 노론과 생각이 같았다. 거대한 프로젝트가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이 많은 숙종이 사망했다. 아들 경종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정적이 되는 것을 아버지의 사망이 막아준 셈이었다. 힘들고 어렵게 경종이 즉위하였다. 노론은 아연실색하였고, 소론은 안도하였다.
노론은 마음이 급해졌다. 즉위 1년 만에 24세의 젊은 현왕을 두고 배다른 형제 연잉군(영조)을 세제로 책봉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숙종 때라면 능지처참을 당해도 시원찮을 소리였지만 힘 없는 왕 경종은 이를 승낙했다.
그러자 탄력받은 노론은 다시 두 달만에 세제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자고 주장하고 나왔다. 경종보고 왕을 사직하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이는 노론의 절대 무리수였다. 군사부일체! 명분숭상의 성리학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종과 소론에게는 결사항전 이외에 퇴로가 없었다.
소론은 머리띠를 다시 묶었다.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명분은 우리 편이었다. “대리청정 주장은 역적들의 주장입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당황한 노론은 대리청정 주장을 철회했다. 경종도 그 명을 취소했다. 그런데 다시 3일 만에 경종은 대리청정 명을 내렸다. 노론은 소론과 같이 꿇어앉아 이를 반대하였지만 노론의 반대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생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노론은 경종이 대리청정 명을 며칠이 지나도 환수를 하지 않자 그것이 경종의 진심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다시 대리청정에 찬성을 하고 나왔다. 대리청정 주장! 취소! 다시 대리 청정에 찬성! 명분에서 밀린 노론이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소론 대표선수 김일경이 강력한 상소를 올렸다. 조선에서 상소는 고소장이었다.
그때까지 실명을 들고 공격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노론 4대신의 실명을 들고 나오면서 역적이라고, 죽여야 마땅하다고 썼고, 소론들은 일치단결하여 동의를 표했다. 쪽수는 많아도 명분에서 밀린 노론측이 눈을 껌벅거리면서 머뭇거린 사이에 경종은 노론 4대신을 먼저 귀양을 보내 위리안치시켰고, 때맞춰 나와 준 노론 4대신의 자녀들의 역모추진 사건으로 4대신들에게 약사발을 선물로 주었다(임인옥사).
명분에서 밀린 노론은 자파 보스들이 검정물을 마시는 것을 눈 뜬채 지켜보아야 했다. 경종에게 힘이 없다고 무리하게 몰아붙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퇴로를 주지 않고 거칠게 달려들은 대가였다.
일상사에서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한다. 한번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의 퇴로를 살펴보자. 그에게 퇴로가 없어보이면 너무 몰아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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