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식 대전 시민아카데미 대표 |
'한국에 와서 잘 살 자신이 있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미국에 남아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딸을 잘 부탁한다'라는 유서를 아내에게 남겼다 한다.
한 성인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착잡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국은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라는 자랑스럽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출산율 또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모두가 한국사회의 불안정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지속가능할지 까지를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지금 이 사회와 여기에서 사는 삶들이 가지는 공통의 감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 심리적인 불안, 사회적 불안은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사회 속에 내재화 되어 있고 구조화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안의 상태를 극복하거나 벗어나려는 방식이 개인의 심리나 사회의 구조 또는 제도 속에서 제시되고 발현되고 있느냐다.
많은 연구와 비평 그리고 정치적 공간 속에서 이 문제는 논의되고 심각하게 인식되고는 있지만, 아직 그에 대한 답은 '아니다'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속에서 개인들이 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지극히 즉자적이고 처절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거나, 불안을 애써 회피하며 망각의 늪에 빠지거나,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는 방법뿐이다.
대구의 치과의사가 남긴 유서를 살펴보면 자녀가 한국에 와서 살려는 것을 반대한 것 같다. 이유는 한국에 와서는 잘 살 것 같지 않으니까. 그리고 짐작건데 잘 산다는 것은 남보다 더 잘살고, 남보다 더 행복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충족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살 자신이 없으면 미국에 남아 있는 것이 낫다고 한다.
왜일까.
미국에서의 삶은 남보다 더 잘 살지 않아도, 남보다 더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은 사회의 제도와 삶의 문화가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남보다 위에 서지 못하는 한국에서의 삶 보다는 이방의 경계에서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인가.
물론 그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최근 한반도에 조성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상태에 대한 반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북한의 핵개발을 비판하는 한 쪽과 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또 다른 한 쪽만 있을 뿐 그사이 어디에도 전쟁을 걱정하는 국민은 없다. 과거에 그 흔하던 사재기도 주가의 폭락도 없다.
이제 우리 국민들 모두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일까, 아니면 전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을 통한 현실인식이 있어서 일까.
아닌 것 같다. 다만 애써 외면하여 기억에 담아두기 싫거나, 줄달음치는 도피의 심정이 역으로 평온한 일상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으로 부터의 도피.
도피의 끝자락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절대적 강자 또는 힘, 권력 앞에 존재를 의탁하는 방식밖에 없다. 그리고 존재의 자존이 그것 까지도 거부할 때 남은 것은 파국 뿐이다. 삶의 끝으로서의 파국. 그래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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