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자 1호로 선정된 지난 6년간 연구해 온 이서구 이화여대석좌교수는 지난해 말 국가과학자 사업을 종료했다. 30여년간 미국국립보건 종신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05년 귀국 이화여대에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활성산소 관련 연구로 노벨상후보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이 교수는 연구성과를 돌아보고 국가과학자들이 느끼는 국가과학자 사업의 부족한 점과 보완해야 될 점들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활성산소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는 국가과학자 1호인 이서구(70ㆍ사진) 이화여대 석좌교수다.
1988년 활성산소를 없애는 특수물질인 퍼옥시레독신(Prx)을 세계 최초로 찾아내고, 활성산소가 세포 안에서 각종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 없어서는 안되는 물질이라는 사실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교수는 197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들어가 30여 년간 활성산소와 세포 내 신호물질 연구를 해왔으며, 2005년 국내 과학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귀국, 국내 자리 잡았다. 이교수는 활성산소를 위해 '최고보다는 최초를 선택'했다.
연구자들로부터 관심이 쏠렸던 연구 대신 알려지지 않고 관심도 없었던 연구를 택해,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연구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1986년 그는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의 기본 물질인 '인지질분해효소(PLC)'를 발견하고 그 역할과 작용을 알아내 학계 주목을 받았다. 이 효소가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발생 메커니즘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PLC는 당시 많은 연구자가 주력해 대중화된 연구 주제였으며, PLC관련 그의 논문은 1만 9000번(현재는 3만여 번) 다른 연구자들이 인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교수의 은사인 스테드만 교수 'PLC처럼 대중화된 연구를 하지 말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라. 남들이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을 연구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에 따라 PLC연구로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던 이교수는 새로운 연구에 몰두했다.
인기정점에서 내려와 새로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후 이교수는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하는 퍼옥시레독신(Prx)의 존재를 규명, 활성산소가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세계최초로 밝혀냈다.
호흡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산소는 에너지 생산을 위한 체내 대사 과정 중에 일부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활성산소라는 유해성 물질을 생성, 세포는 해를 입게 되고 나아가 노화, 암, 당뇨, 심혈관계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 다양한 병리적 증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교수는 인체 내 독성물질로 인식된 활성화 산소가 노화나 질병을 유발하는 역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세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순기능역할을 한다고 밝혀냈다.
' 노화 부르는 악마, 최적의 몸 만드는 천사, 두 얼굴'을 가진 활성산소의 이중성을 밝힌 이교수는 “처음 논문을 발표했을 때에는 연구자들이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1년에 600여 편의 논문이 나오는 분야가 됐다”며 최고보다는 최초를 선택했던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이교수가 지금까지 발표한 340여 편의 논문 가운데 80여 편은 퍼옥시레독신에 관한 연구다.
국가과학자로 활성산소 연구를 지속해 온 이교수는 2010년에는 학계의 오랜 궁금증이었던 국지적 활성산소 증가 메커니즘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활성산소가 세포 내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사용된다는 순기능 역할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는 활성산소의 비정상적인 증가로 유발되는 노화, 당뇨, 암, 뇌질환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몸 안에 활성산소가 적당량 있는 상태에서 사람은 최고의 성과를 내며 이 경우 활성산소는 유스트레스(eustress, 좋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하지만, 활성산소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신체에 나쁜 스트레스로 작용한, 노화ㆍ암 등을 유발하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활성산소의 과유불급에 대해 밝혀낸 것이다.
NIH종신연구원이었던 이교수는 NIH에서는 보기 드물게 미국과 한국에 2개의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인정해줘 1998년부터 이화여대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 이화여대로 옮긴 이교수는 2006년 국가과학자 1호로 선정됐으며, 1년간 15억 원씩 6년간 지원한다는 초기 제도에 따라 2012년 말 국가과학자지원사업이 종료돼 5일 연세대학교의료원 의생명연구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교수는 “연간 15억 원이라는 연구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지원기간과 금액 면에서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 이외도 우수한 후배 과학자를 육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권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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