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박근혜 대통령 '그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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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박근혜 대통령 '그 사람을 가졌는가'

[중도시평]김대중 정치부장(부국장)

  • 승인 2013-03-05 16:38
  • 신문게재 2013-03-06 20면
  • 김대중 기자김대중 기자
▲ 김대중 정치부장(부국장)
▲ 김대중 정치부장(부국장)
10년 전인 2003년 초 봄의 일이다. 회사 사정으로 잠시 취재현장을 떠나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한 편의 시가 적힌 편지를 받았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이다. 필자는 손으로 써내려간 편지 속 시를 읽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직후 같이 일했던 참모진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 시를 낭독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은 사람은 없었지만, 한 참석자는 국정최고 책임자이자 국군통수권자로 첫발을 내디딘 박근혜 대통령이 “그 사람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계간 '시와 시학' 봄호에 실은 기고문에서도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은 적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기고를 통해 가장 좋아한다고 적고, 박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참모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읊조린 것을 보면 가장 좋아하는 시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함석헌 선생의 글은 학생운동에 몸담지 않았어도 유신과 군사정권 때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두번 접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씨알의 소리', '뜻으로 본 한국역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이 그 목록들이다. 생전 법정 스님은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고 존경을 다했고, 시인 김지하는 선생의 흰머리와 흰수염ㆍ흰두루마기ㆍ흰고무신을 빗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직 하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반유신투쟁에 앞장섰던 재야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선생의 시를 이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민간인 신분이 된 이 전 대통령의 마음이자,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새 통치권자 박 대통령의 처지를 애둘러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1월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른 후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청와대를 나왔다가 33년 3개월 만에 다시 입성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국민과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늦어지면서 장관임명은 지연되고 있고, 장관후보자들마저 각종 의혹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우리지역 사람을 중용하지 않는다는 아우성과 대선 때 약속했던 각종 국책사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 5년의 시작'은 흔들리고 있다. 당선인 시절부터 불거진 '불통의 이미지'는 취임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만기친람할 수 없지만 인사 문제를 포함한 모든 책임은 통치권자이자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열음은 각료에 대한 인사와 직무를 어떻게 분담할 것이냐에서부터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당태종과 명재상 위징의 치국문답인 '정관정요'를 탐독했다고 들었다. 직간(直諫)의 상징처럼 돼 있는 위징은 권력에 취한 당태종에게 치국과 소통의 부재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간태종십사소를 올린다.

'군주의 선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엄혹한 형벌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지만 불만을 품게 된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교만이 걱정된다면 바다는 많은 하천의 끝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라. 눈과 귀가 막힐 것이 두렵다면 아랫사람의 의견을 겸허히 경청해라. 아첨배들이 두렵다면 언행을 단정히 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

박 대통령은 '산업화의 박정희'와 '민주화의 김대중'을 넘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출발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새 시대를 여는 위대한 도전'에 성공하길 희망한다. 박 대통령의 성공은 곧 '국민의 성공'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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