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이웃공동체 마을에 가서 이병상 회장과 친구들이 공연하며 자원봉사하고 있다. |
평일엔 인천 송도 신도시 본사 공장에서 굴착기에 사용되는 부품을 만들어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고 5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주)SMT ENG Co,LTD 대표이사로서 사업에 전념하다가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대전으로 돌아오는 그는 1분 1초도 쉴틈이 없이 바쁘다. 그를 부르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본사가 인천에 있어도 집이 대전인 이유는 그의 회사 협력업체가 마산과 진주에 있어 서울, 마산, 진주, 인천을 오고가며 외국과 무역을 하는 그로서는 대전이 가장 중간지점이라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고향 청양이 가까이 있으니 망설일 필요없이 대전에 터전을 잡았다.
“대전은 참 살기 좋은 곳입니다. 10분만 벗어나도 계룡산과 대청호가 있고 주변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7년전 대전에 정착하면서 저의 취미를 살려 대전통기타마을도 만들고 라뮤즈음악회 회장도 맡게 된거죠.”
▲대전통기타마을에서 대규모 빅 통기타 콘서트 준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탄방동 한가람 네거리 대전통기타마을 연습실에는 120여명의 통기타 동호인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지난연말에도 하나은행 10층 강당에서 송년 자선음악회를 했고, 올 연말에는 7~8개 통기타클럽이 연합한 가운데 정심화회관에서 대규모의 빅 통기타 콘서트를 계획중이다.
“통기타 동호인들을 모아서 품격있고 수준 높은 통기타 공연을 해보려고 합니다. 1500여명의 관객들을 초청해서 대중친화적인 공연으로 통기타의 매력을 흠뻑 발산 할 겁니다. 주변에 통기타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분들의 욕구를 해소시킬만한 동아리가 없어요. 제가 통기타 선율로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까 합니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이 대표이사가 야심찬 포부로 전해주는 말이다.
▲업무 스트레스는 주말 음악봉사로 푼다
“평일에 사업을 하며 업무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주말에 음악봉사를 하며 풉니다. 절대 개런티를 받지 않고 기부하고 오죠. 개중에는 개런티를 꼭 지불하겠다는 곳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개런티를 받아 노인정 같은 곳에 기부합니다. 순수한 어쿼스틱으로 연주하는 제 나이또래의 통기타가수가 많지 않다보니 저를 찾는 곳이 정말 많네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사업 업무에 전념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문화생활을 즐기며 재능기부에 앞장서는 그는 “유럽에서 중산층 조건이 '문화생활하기'와 '자기 모국어이외에 반드시 1개 국어를 더하기', 악기 하나씩 다루기, 자원봉사하기”라고 소개하며 “돈만 벌고 쓸줄 모르는 '수전노'가 되지 말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시절엔 통기타 가수, 군대시절엔 한석규와 문선대 생활
현재 경기도 일산에 공동투자자와 함께 수천억을 투자해 한류파크타운을 조성중인 그는 대학시절 유명한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다.
“나무와 새, 짱아를 부른 가수 강석호씨와 함께 '이병상 강석호' 듀엣 통기타가수로 활동하면서 대학가요제도 준비했었죠. 그러다가 강원도 27사단에서 군대생활할때는 지금의 연예 사병들 활동무대와 비슷한 '문선대(문화선전대)'에서 제가 상병일때 일등병으로 들어온 영화배우 한석규씨와 한조를 이뤄 노래와 연기로 각 부대를 돌며 1년에 6개월씩 공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석규씨는 그때 동국대 연극영화과 2학년 마치고 군대에 왔는데 강변가요제에서 '덧마루'라는 트리오로 출전해 장려상을 받은 친구입니다. 94년 드라마 '서울의 달'에 출연한 뒤 스타덤에 오르더군요. 한석규씨와 문선대 생활하며 1년에 4번 공연할 당시 군부대 무대에 오르는 사회자들로부터 유머기법을 배우고 충청도의 해학과 기지로 사람을 웃기면서 재미있게 사회보는 방법도 터득하게 됐습니다.”
청양에서 8녀 1남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빨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문박초, 청양중 졸업후 안양공고 기계과를 들어갔다. 그러나 기계 용접은 그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학교 축제나 소풍때는 친구들로부터 인기 짱인 그였지만 도무지 학교 공부는 그의 적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처절하게 인생의 쓴맛을 본 그는 결국 재수하며 목숨 걸고 공부한 끝에 한양대 영문과에 들어갔지만 역시 공부보다는 통기타서클 활동에 전념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 접고 기업에 취직
그러나 그는 프로가수로 데뷔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통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를 '딴따라'라고 비하하며 기타를 다섯대나 부수면서까지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수산중공업에 입사해 오랜동안 해외에서 근무하다 2007년도에 귀국, 지금의 무역회사 (주)SMT ENG Co,LTD 를 설립하게 됐다.
▲대전통기타마을 친구들과 봉사공연
“대전통기타마을 친구들과 함께 벌곡면에 있는 예수사랑공동체로 봉사공연을 다녀왔습니다. 대부분 지능지수가 70~80사이의 지적 장애우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그들과 친구가 되어 노래 부르고 놀아주었더니 헤어질때 가지 말라고 눈물 흘리더군요. 이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지요.”
이병상 대표이사는 “더 열심히 살고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대전사랑모임 친구들과 박범계 국회의원과 보문산 뒤편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에 가서 공연을 해드렸습니다. 신기하게도 1시간 반동안 이어진 저희들 공연시간에 어르신들이 꼼짝하지 않고 재미있게 경청해주셨습니다.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어르신들은 그대로 앉아있으시면서 노래를 더 불러달라고 아우성이셨죠. 그래서 30분 동안이나 더 노래를 불러드린 인상깊은 기억이 있답니다.”
이병상 대표이사는 이렇게 노인요양시설에서 공연했을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깊은 체험을 소개했다.
“최근에는 음악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전대 한방병원 초청으로 환자와 내원객들을 위해 '고객행복 통기타 미니콘서트'를 해드렸는데요. 환자분들과 내원객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 병원에서의 음악봉사도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병상 대표이사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하지만 절대 출연료를 받지 않는다. 온전히 재능기부하며 자원봉사하는 삶을 철칙으로 삼고 살아온 그다.
“제가 80년대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다가 사업을 위해 잠시 음악활동을 접었죠. 그런데 사업만 하고 돈만 버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고 보람과 의미도 못찼겠더군요. 그래서 주말 시간을 이용해 다시 통기타를 잡으니 제 마음도 즐거워지고 다른 분들도 즐거워하셔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라뮤즈음악회 회장이 된 것을 계기로 다시 통기타와 함께 하는 음악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병상 대표이사는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저에게 많은 재능과 건강한 육체를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아낌없이 소외계층이나 필요한 제3자에게 나누어주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통기타모임에서도 후배들에게 항상 이렇게 강조한다.
“혼자 즐기고 행복해지려고 기타를 치는 것도 좋지만 소외된 이웃들에게 가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인생은 유한하지만 봉사의 발자취는 영원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바쁜 시간 쪼개 봉사할 때 유일하게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저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이웃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재능,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고, 무료로 남에게 아낌없이 줄줄 아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요?”
이병상 대표이사는 누구?
1961년 청양 출생으로 한양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수산중공업, 수산특장, 수산정밀, 대호건설, 대동조선, 세양선박 등 수산그룹의 해외사업부에서 10년을 근무했다. 현재 수출전문기업인 (주)에스엠티이엔지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주말엔 대전 라뮤즈 음악회 회장과 대전통기타마을 명예회장, 한중일 경제포럼 부회장, 사회정의실천시민연합 대전충남지부 부회장, 한반도 정책포럼 대전충남지부 부회장, 스마트 대전방송국 부사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유머스피치전문가이자 대체의학전문가이기도 하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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