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 박근혜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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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 박근혜 폭탄주?

  • 승인 2013-02-28 15:58
  • 신문게재 2013-03-04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박근혜는 폭탄주를 돌릴 때 이런 농담을 했다.
“술 갖고 장난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박근혜의 술자리 철학은 '절대 강요하지 말라'다.
―『박근혜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천영식, 북포스)


서리 맞은 홍시가 들어간 청도 감와인이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 쓰였다. 대통령 연고지 근방의 특산주가 두 번 연속 선정됐다. 쩨쩨한 지역정서나 조정하자는 게 아니다.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고사가 얽힌 면천 두견주, 공산성에서 풍류 곁들여 마셨던 계룡 백일주, 명성왕후의 친정에서 빚어 마셨던 가야곡 왕주, 과거시험 길 선비를 주저앉힌 한산 소곡주를 생각하니 더 아쉽다.

아쉬운 것이 또 있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미명을 건 문화 마케팅이 술로 옮겨간 부분도 좀 못마땅하다. 구미 등 지방자치단체는 비탁(비어+탁주), 막사(막걸리+사이다)를 박정희 폭탄주라며 관광자원화한다. 폭탄주가 문화가 된 나라답다. 이명박 직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보드카 폭탄주 정상외교도 특기할 만하다. 대통령이 이완구 전 충남지사와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폭탄주 러브샷을 시킨 장소 또한 청와대다. 행정도시 해법으로 신경이 곤두서던 시기의 일이다.

이리저리 얽힌 일화 말고 폭탄주 종류로도 우리를 따를 나라는 없다. 충성주, 파도타기주, 비아그라주는 국어연구원 신어자료집에 실려 최고 잘되면 사전 표제어로 등극할 수도 있다. 가랑이주, 정충하초주, 사정주 등의 변태성 아류까지 나왔다. 일부 깨어 있는(?) 국회의원들이 폭탄주 소탕을 위해 '폭소클럽'을 만들었지만 조용히 폭탄주 마시자는 '조폭클럽'에 평정당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풍선효과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현재 우리가 애음하는 폭탄주의 효시로 꼽힌다. 박 전 의장은 춘천지검장 시절의 '개발' 비화에도 불구하고 양폭(양주+맥주)의 꽃은 춘천 아닌 대전에서 피웠다. 그가 대전지검장으로 근무한 얼마 뒤에 엄지와 약지로 잔을 거머쥐는 '심스 그립(Shim's grip, 심재륜 타법)에 빛나는 심재륜 씨까지 지검장을 거쳐가자 대전이 무슨 폭탄주 아성처럼 비쳐졌다. 그러고는 '우리도 한번 먹어보자' 심리가 발동하면서 소폭(소주+맥주)이 확 번졌다.

물론 글로벌 원조는 20세기 초 미국 부두노동자들이 만든 위스키+맥주의 위맥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일부는 제정러시아의 시베리아 벌목공들이 춥다고 마신 보드카+맥주의 보맥을 폭탄주의 시초로 쳐준다. 그런데 안압지에서 출토된 주령구(酒令具)라는 주사위의 술자리 벌칙을 보면 한반도 원조설을 내놓고 싶다.

주사위에 적힌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석 잔 단번에 마시기)와 양잔즉방(兩盞則放, 연속 두 잔 마시기)은 강화된 '원샷'이다. 곡비즉진(曲臂卽盡, 서로 팔 구부려 잔 비우기)도 있다. 신라 때 '러브샷'을 했더라는 얘기다. 단시간 동시에 망가지는 집단주의 음주문화의 내력은 이렇게 뿌리 깊다. 회식에서 폭탄주 12잔 마시고 사망한 데 대해 '업무상 재해' 판결이 내려졌고, '러브샷 강요해도 성추행'이라는 판결이 나와 있다. 적게 마시면 약주요, 폭음하면 망주인 것은 고금이 같다.

때가 때인 만큼 새 정부 '폭탄주 정책'이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박근혜 새 대통령은 주량이 폭탄주 1잔 정도지만 마시기보다 제조를 즐긴다. 폭탄주 강권, 러브샷 강요는 하지 않을 타입이다. 바라건대 병권도 잔권도 없는 비주류(非酒類), 아니 사회적 비주류(非主流)도 챙기는 정부가 됐으면 한다. 이럴 때 정말 빚어야 할 술은 팔도화합주다. 폭탄사(辭)를 어떻게 하든 말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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