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시골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우리 사회를 후려치는 꾸지람이다.
그렇다. 맞다. 틀린 말씀 아니다. 열에 아홉은 대학에 진학하는 세상이다. 옛 어른들은 상상할 수 없던 가방끈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꿈도 못 꿨다. 그 시절 한글만 깨우쳐도 으쓱했다. 면사무소에 출생신고도 '대서소' 신세를 졌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치열한 경쟁을 뚫은 공무원이 100만명인데 나랏일이 뻐걱거린다. 선생님 수가 40만명인데도 교육붕괴라고 아우성이다. 교회당ㆍ불당ㆍ성당 합쳐 9만6000여곳에 성직자(?)만 35만명인데 '영혼혼탁'이라며 질타 받는다. 엘리트라 으스대는 교수ㆍ의사ㆍ목사가 30만명인데 존경받지 못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000달러인데 못살겠단다.
무엇이 문제인가? 진단 결과는 일치한다. 교육이 잘못이라고 말이다. '학교 탓'만 한다. '내 탓'은 눈곱만큼도 없다. 가정교육은 '꽝'이면서…. 교육이 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지식을 쌓고 양식을 기르는 거다.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 지식만 추구했지 양식은 뒷전이다. 지식많고 양식도 풍성하면 얼마나 좋을꼬….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지식은 '앎'이요, 양식은 '참'이다. '똑똑'과 '슬기'다. 둘은 차이가 많다. 뿌리부터 다르다. 하나는 머리요, 하나는 가슴이다. 지식은 쌓는다 하고, 양식은 기른다고 한다. 둘은 반대쪽을 향하기도 한다. '질량불변 법칙'이 작용하기도 한다. 어느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지는 모습처럼 말이다. 마치 고무풍선처럼….
지식만 쌓으면 양식이 움트기 어렵고, 양식만 강조하면 지식은 쪼그라들기도 한다. 공부 잘하면 장땡일까? '지식사회'는 최선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공평치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편견(偏見)이요, 성질이 편벽한 사람을 편인(偏人)이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이 편애(偏愛)요, 음식을 가려먹음이 편식(偏食)이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침을 편중(偏重)이라 하고, 도량과 아량이 좁음을 편협(偏狹)이라 하며, 공정하지 못한 판정을 편파(偏頗)라 한다. 이와 같이 '편(偏)'으로 시작하는 낱말은 모두 바르지 못하고 좋지 않은 뜻을 지닌다.
왜 그런 걸까? '편(偏)'에 그 참 뜻이 숨어있다. 글자를 뜯어보자. 인(人)과 호(戶)와 책(冊)이 합쳐진 글자가 '偏'이다. 사람(人)이 집(戶)구석에서 책(冊)만 읽으면 편협해진다는 것이리라. 곧, 책만 먹고 공부만 잘 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는 것 아닌가!
지식 많다고 바르게 행동하는가. 참되게 사는가. 그렇지 않다. 지식과 양식엔 온도 차가 크다. 지식은 차갑고 양식은 따사롭다. 그래서 지식은 아래로 흐르고 양식은 위로 향한다. 양식 위에 지식이 쌓여야 둘은 융합한다. 지식보다 양식이 먼저다. 그래야 덜 검고, 덜 어둡고, 덜 썩는다. 작금의 현실이 그렇지 아니한가. 새 정부에 총리, 장관, 청와대 고위직에 거론된 인물을 보라. 모두 '공부의 달인[偏]' 아닌가.
서민은 허리띠 졸라매도 한 달에 100만원 모으기도 벅차다. 1년이면 1000만원, 꼬박 10년 모아야 1억원이다. 한데 법률회사 로펌에서 월 1억원씩 총 16억원을 받았는데 전관예우가 아니란다. 정당한 보수라나! 억장이 무너진다. 병역면제는 당연하고, 세금탈루는 기본이다. 위장전입은 관행이요, 재산증식엔 귀재다. 편법증여도 예사다. 8살 아이에게 수 만 평 땅덩이를 증여하고도 합법이라나. 표절논문 뻔한데도 뻔뻔함에 기가 차다.
4대의무도 제대로 이행치 않았음에도 '국민자격'은 있는 건가. '국민행복ㆍ희망의 새 시대'가 열린다고?
“부끄럽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인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들었으면 뒤틀리지나 않을진대…. 뼈대있는 집안이라 곧게(?) 자라서인가. 배움 많아 머리가 무거워선가. 높은 자들은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을까. 청문회 때마다, '편법(便法)의 대가'요, '편법(偏法)의 달인'만 뽑히는 걸까! '편(便)'도 문제지만, '편(偏)'은 더 큰 문제다. 뭐라꼬? 청문회가 문제라고….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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