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진 교장 |
박 교장은 3월부터 배재대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할 예정이다. 그는 스스로를 '복 많이 받은 선생'이라고 했다. 1978년 대전대신고에 부임해 대신고 교감, 대신중 교장, 대신고 교장을 거치며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제자 사랑이 남달라 졸업생들도 그를 많이 따랐다. 재단측도 열정적인 박 교장의 교육관을 높이 사 주요 보직을 줬다. 그는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했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대신고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을 친삼촌 같은 친근함으로 대해줬던 것도 박 교장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 어렵고 일이 많다는 대신고 교무부장도 6년씩이나 해냈다.
박 교장은 당시를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런 제자들이 공부를 잘해 사회 곳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졸업생들에게 전화를 할 때 박 교장은 항상 '교장'보다는 '박 선생'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겸손함 때문이었다.
학교 발전을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대전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 지역 정치권, 총동창회를 망라해 학교 발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뛰었다. 자율형 사립고 지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박 교장은 후배 교사들에게는 소명의식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모든 건 담임에게 달렸다. 학교폭력, 교권 붕괴 등을 예방하려면 소명의식을 가진 담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도 정직이 가장 큰 덕목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박 교장은 “많은 학교가 인재, 영재를 육성한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정직과 협동”이라며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은 많지만, 정직하지 않고, 서로 돕지 않으면 좋은 인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장의 이런 교육관은 4년제 대학 못 가는 학생, 왕따, 그리고 휴대전화가 없는 이른바 '3무(無) 대신고'를 만들었다. 아직도 젊은 힘이 넘치는 박 교장은 28일 정든 교정을 떠나 3월 부터 배재대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제 2의 교직 인생을 시작할 예정이다.
오주영 기자 ojy8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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