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이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보아뱀 그림은 무엇으로 보일까? 모자로 보일까?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으로 보일까? 혹시 가느다란 보아뱀 속에 커다란 코끼리가 들어가 있는 그림이 부조리하다거나 황당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린왕자'속 어른들처럼 굳어버린 틀 속에 갇혀 보아뱀 따위의 그림에는 아무 관심 없는 어른임이 분명하다. 틀을 넘어 사물을 자유로이 꿰뚫어보지 못하고 '숫자'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정말로 '중대한 일'이 뭔지 모른 채 늘 설명을 요구하는 어른일 뿐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마음엔 보아뱀 그림이 '생(生)과 사(死)의 변증법'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헌사>에서 밝혔듯이 '처음에는 모두 어린이들'이었을 어른들에게 바친 동화다. 우리는 어느덧 어른 왕이 돼 버렸다. 눈은 빨라지고 마음은 더욱 바빠진 어른이 돼 버렸다. 어느 시인이 쓴 시구처럼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아이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중대한 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그 꽃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그 꽃의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만 했던 거야.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풍겨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결코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교활한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거짓말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다는 걸 눈치 챘어야 했어. 꽃들은 그처럼 모순된 존재들이거든!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을 몰랐던 거야.” 꽃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왕자!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참을성이 필요한지…. 우리는 정말로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으로 '중대한 일'이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해 골몰하는 것이다. 어린왕자는 이타심을 소유한 점등인을 유일한 벗으로 삼고 싶어 했다. 가로등을 켜서 별 하나 꽃 한 송이를 활짝 피어나게 하고, 가로등을 꺼서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점등인만이 유익한 일을 하는 어른이니까. 그 유익함은 여우가 어린왕자와 작별할 때 속삭였던 비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볼 줄 아는 '마음눈(心眼)'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눈을 되찾게 되면,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한 송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어린왕자'를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그때마다 매번 재미와 감동, 슬픔을 느끼는 것은 엄청난 은유와 상징 때문이다. 1943년 뉴욕에서 처음 발표된 '어린왕자'는 세계를 통틀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한다.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ㆍ출간되었고, 한국에서도 300여개의 번역본이 존재한다고 하니 어쩌면 '버섯'의 삶을 살며 위로를 필요로 하는 어른들이 세상에는 참 많은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님도 가고 팠던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찬탄했다. “네 목소리는 들을수록 새롭기만 해. 그건 영원한 영혼의 모음(母音)이야. 아 이토록 네가 나를 흔드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른들처럼 말할 때마다 '어린왕자'의 목소리를 볼륨 높여 들어야 한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어린왕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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