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 |
음악과 함께 아이들의 우산춤이 시작되고,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들의 군무가 끝나자 사회자의 진행이 이어졌다.
'1학년 학생들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산초등학교 제100회 졸업식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리 반 15명을 위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이어진 재학생들의 현악 공연과 합창, 교직원들의 축하 공연, 지역주민들의 밴드 공연까지, 여느 학교와 사뭇 다른 우리들만의 잔치를 위한 잔치. 서운함을 덮는 미래로 한발 더 나가는 아이들을 위한 잔치 분위기….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드는 지역인사네, 어디 장(長)이네 하는 사람들의 수십 년 간 한결 같은 인사말 따위는 애시당초 치워버린, 정말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였다. 또, 정말 우리 아이들만 주목받고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느껴질 잔치여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3월, 새 학교 전임(轉任)과 함께 만난 우리 반은 10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들이었다. 수업 시간엔 너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교사를 보는 아이는 두세 명 정도. 방과후 아이들 입에선 욕설이 난무하고, 짝을 이룬 아이들의 다른 아이 헐뜯기는 이 아이들에게 너무 익숙해보였다. 이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매일 고민하며 지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똑같은 13살 어린이들이었고, 나 또한 여전히 대한민국의 시골 학교 교사인 것은 변함없었다.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맞는 답이 될 거라는 생각 외엔 어떤 결론도 없기에 여전히 내가 아는 아이들의 모습에 맞춰 마음 열기를 시도했다. 학급의 규칙은 엄하게, 잘잘못은 그 자리에서 함께 가리고, 이 아이들에겐 익숙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사과하기, 그리고 주말은 선생님 집에서 내가 아는 방법, 사람이 사람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만들어갔다.
한동안 엄한 규칙에 여자 아이들은 나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었지만, 점점 그 욕설이 줄어들고, 행동이 변화하고, 한 덩어리 학급의 모양이 어느 정도 잡아졌다고 느꼈을 때는 벌써 여름방학이 돼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하고, 여름방학 중 교실에서 1박 2일로 함께 한 학급 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갔다. '함께'라는 의미를 스스로 느끼고, 그에 맞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돌아볼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학급은 안정이 되고 교실의 온도는 높아져갔다.
졸업 전 2월 중에 1박2일 학급 캠프를 다시 할 때 아이들은 이제 누구보다 끈끈하게 서로를 안아주고 살펴주는 마음을 보여줬다. 그 아이들이 이제 졸업을 한다.
마음을 여는데 익숙하지 않던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할 줄 알고, 남에게 주는 방법을 모르던 아이들이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는 아이들로 조금은 성장해서 졸업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을 위한 졸업식은 서운한 감정에 눈물 보이는 식(式)이 아닌 1년간 변화한 것처럼 앞으로의 더 많은 멋진 변화를 위한 잔치여야만 했다. 졸업식 마지막에 꿈풍선을 날리며 바랐던 것처럼.
반 아이 중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불만과 욕을 해 오던 여자 아이가 2학기엔 나에게 와서 안기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일이 잦아졌다. 그 아이가 어제 연락해서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졸업식에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보내준 내 답은 그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보내는 나의 마음이었다.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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