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원산까지 남북을 오가며 대동강 산바람과 부산 바다 내음을 실어 날랐을 철마는 행선지를 잃어버렸다. 언제쯤이면 기쁨의 눈물로 철마를 닦고 희망의 햇살로 빛나는 철로 위를 달릴 수 있을까.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제159차 본회의 휴전협정 조인식에서 유엔군 대표인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과 북한과 중국측 대표 남일이 휴전협정조인문에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서명했다.
미 8군 사령관은 '오후 10시를 기해 전투 행위를 중지한다'는 정전명령을 하달했다. 전쟁 발발 3년 1개월만에 전쟁이 정지됐다. 1951년 7월 10일, 첫 정전협상 후 정전협정체결까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정전협정을 맺은 지 딱 60년이 된다. 한 갑자의 세월이 흐른 지금, 7월 27일이 시사하는 바를 찾아보자.
7월 27일란 숫자는 영화 '고지전'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7월 27일 10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는 문건을 읽는 순간 모두 환호에 찬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정전협정효력은 22시부터 발생하므로, 그전에 애록고지를 재탈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랐던 부대원들은 최후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한다. 이 애록고지는 지금의 백마고지로, 시체가 쌓여 만들어진 산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때 철모를 쓰고 군화를 벗지 못한 수많은 주검은 이제 산이 돼버렸다.
지금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가 13만 명이 넘으며 대전현충원 위패실에 모셔진 전사자만 4만여 명이 된다. 가끔 위패실에서 검은 돌에 각자된 이름만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는 유가족들을 보게 된다. 어느새 정전 60년이 됐지만 유가족의 아픔은 오늘도 정전되지 않았다.
눈물로 얼룩진 위패실에 서면, 나란히 지워진 2개의 이름이 눈에 띈다. 형제전사자다. 같은 날 입대하고,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투에 참여해 한 날 한 시에 전사했으며, 같은 날 유해가 발굴돼 이제는 '흙이 되어버린 형제' 전사자다. 1951년 4월 5일 빨치산 토벌작전 도중 전사했고, 50년이 흐른 2001년 5월 21일 전남 화순군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었던 형제애의 꽃은 2002년 4월 26일, 푸른 잔디 위에 나란히 묘비로 피어 있다.
잊혀진 전쟁, 산화한 이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이산가족의 눈물, 찾는 이 없는 무덤처럼, 푸른 잡초에 둘러싸인 철마를 기억하는 이도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0위라는 경제대국의 신화를 이뤘지만 청소년들의 안보의식은 매우 희박해졌다. 이제는 정전과 분단이 당연시돼 통일과 완전한 평화를 바라는 이도 드문 것 같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녹슨 철마를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철로를 이으려면 굳건한 안보의식과 나라사랑정신이 필요하다. 우선 과거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도 이 땅을 사랑한 누군가의 피와 살로 얻어진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운 UN참전유공자와 호국영령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정전 60주년이 아니라 종전 60주년을 맞아 철마를 타고 하루빨리 대륙으로 떠나고 싶다. 허리 잘린 호랑이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호령하며 질주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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