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자연을 벗하여 살던 우리 선조들은 반복하여 흐르는 시간의 이름도 자연의 현상을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명칭들을 부여하였다. 가령 우수(雨水)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의 이름이며 경칩(驚蟄)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깨어날 만큼 따스해지는 시간의 이름이니 멋지지 않은가? “경칩난 게로군!”이라는 속담은 벌레들이 경칩이 되면 울기 시작하는 것처럼 과묵한 사람이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의미라고 하니 이 또한 재미있는 표현 아닌가? 한국의 개구리들보다 서양의 두더지들은 더 성질이 급한지 서양의 봄을 알리는 일명 '두더지의 날'(Groundhog Day) 혹은 성촉절(聖燭節, Candlemas)은 경칩보다 보통 한달 앞선 2월 초에 행사가 열리곤 한다.
3월이 유독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모든 교육기관들의 새 학년이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의 초등학교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귀염둥이 꼬마들이 입학식에 의젓하게 줄 서있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대견스럽다. 200여곳의 전국 대학 캠퍼스도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풋풋하고 귀여운 신입생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싱싱한 젊음의 맥박치는 소리가 느껴지는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사람들은 대학신입생을 아예 '신선한 사람'(freshman)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우리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 중 하나가 대학생활 기간임은 분명하다. 4년간 학창생활 동안 과연 무엇을 이루던 간에 대학시절은 모든 이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젊은 계절은 젊음 그 자체로서 이미 훌륭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음을 마음껏 즐기고 누려야 할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우울하다는 소식이 많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취업이 되지 않으니 4년간 배운 학문이 전혀 실효성이 없는 이론에 불과한 것 같은 좌절감이 들기 때문이다.
패기에 넘쳐야 할 대학신입생들 조차 미리부터 주눅들게 하는 '취업'이라는 현실적 괴물은 대학 본연의 의미조차 의심하게 할만큼 위협적인 존재다. 흔히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보다 단순하게 말하면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전념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다. 사실 인류역사상 세상의 여러 직업들 가운데 유형적 물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적 지식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직업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른바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 혹은 '학문적 인간'의 등장은 재화와 물품의 생산적 활동을 추구하기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이론적 지식을 탐구하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함을 의미하였다.
대학이 인류에게 큰 선물이라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 한 마디로 대학은 앎과 배움이 있는 곳이다. 지식은 대학의 본분이며 대학의 영광이다. 대학 도서관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들은 한 권, 한 권 모두가 다 인간이 획득한 지식을 들어내는 기념비들이다. 그 낡은 책장을 한 갈피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지식이라는 크나큰 연결고리를 통해 인류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어간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과 사물에 관하여 이만큼이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앎과 배움이 있기 때문에 대학은 존재하며, 대학은 아름답고, 대학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대학과 대학생들을 오로지 '취업'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 같다.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읽어야 한다면서 '데칸쇼'를 외쳤던 선배들과는 달리 공무원시험 참고서를 외워야 하는 오늘의 후학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 봄에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께서 정말 우리 대학신입생들이 봄다운 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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