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다행히 미디어를 포함해 어린이들이 간접 경험할 기회가 많은 시대라서 낯섦이 예전보다 덜하지만 '제도권 교육' 첫 진입에 공포 수준의 불안감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
한사코 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는(분리, 격리 공포증) 아이를 지혜롭게 달래는 기술이 필요한 때다.
요즘은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끔찍한 사랑으로 키우고 있지만 사실 인류역사는 어린이들에게 혹독한 수난의 시간이었던 때가 많았다.
기원전 그리스 시대의 도시국가 스파르타 어린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학교가 아니라 다른 지방의 '군대'에 들어가 고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방위와 정복 전쟁의 싸움꾼으로 만들려는 국가 정책이 이러할 진대 가정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반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도시 '아테네'는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라는 사상 최초의 교육기관을 만들었듯이 상대적으로 스파르타처럼 끔찍하게 훈육되지는 않았다. 결국 병영국가인 스파르타는 폐허가 됐고 아테나는 정치, 문화, 예술, 철학, 과학을 눈부시게 활짝 피웠다.
이 대목에서 국가운영체제나 신념체계가 '미래의 에너지'인 어린이들의 자의식과 창의력, 자존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다,
기원후 14~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시대에 비로소 어린이를 배려와 애정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일었지만 구교도(카톨릭)와 신교도(프로테스탄트)간 갈등과 전쟁으로 다시 혼란스러워지자 어린이 수난도 재차 시작됐다. 당시 기독교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는 '악마의 영혼을 몸에 붙이고 태어났기 때문에 혹독하게 가르쳐서 악마를 떼어내야 지옥에 가지 않는다' 였다.
순종과 가부장적 질서 강요가 부활하고 아이의 '기를 꺾는' 유행은 아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님 앞에 자녀가 홀로 서도록 예비하겠다는 적극적인 도덕적 목적 때문이었지만 가정과 교실은 매타작 소리로 공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오죽했으면 로렌스 스톤(영국 역사가)은 “16세기와 17세기 아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오랜 기간을 맞고 자랐다”고 일갈했을까.
그러나 그 시절에도 휴머니스트였던 토마스 모어('유토피아'의 저자)는 신앙심은 깊었지만 공포의 교실, 매질이 횡행했던 16세기 초에 자녀들에게 '깊은 공감'의 편지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다.
“너희들이 울 때면 늘 가슴이 아팠단다. 너희도 내가 얼마나 자주 키스를 해주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매를 자제했는지 잘 알잖니. 매라고 해봐야 언제나 변함없이 공작새 꼬리였단다. 그것마저도 나는 늘 망설였고 그래도 들어야 할 때도 너희들 여린 엉덩이에 자국이 나지 않게 살살 때렸단다. 아이들의 눈물을 보고 같이 울지 않는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도 없단다. 모진 인간일 뿐이지.”
사랑과 배려를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부모들이 그들에게 공감해 주듯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안다. 비로소 1798년 영국의 엄마들에게 내려진 지침은 '교육의 첫째 목적은 아이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가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게 하고 어떻게 '관계' 맺어가는지를 불안해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그것들에 우선 공감하라.
명령 복종과 강요된 순종으로는 세속적 성공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저성장 상태에 놓인다는 연구결과가 아주 많다.
아이들로부터, 우리는 '부인(Madam)', '나으리(Sir)'로 불리는가, 엄마ㆍ아빠로 불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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