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화 이지도시건축사무소장 |
개인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별다른 교류가 없다는 이유로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어색함만 넘쳐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들이 뛰지 못하게 하기 위해 늘 아이들과 승강이를 벌인다.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부득이하게 저녁에 세탁기를 돌리려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 하고, 모처럼 외지에서 손님이 찾아와 밤늦도록 놀 때면 괜히 이웃집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의 공동 주거 환경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주차장에서 이웃 간의 다툼부터 애완동물 관리문제, 각종 이권이 얽혀 투명하지 못한 공동주택 운영문제 등 한둘이 아니다. 여러 문제로 이웃 간에 사소한 분쟁이라도 생기면 서로 고성이 오가고 끝내 볼썽사나운 꼴을 보고 만다. 교류는 언제 열리는지도 모르는 불편한 반상회가 전부고, 사람들은 각자 외로운 섬이 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사는 주택은 어떨까.
같은 일을 한다든지, 취미가 같다거나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삶을 나누는 주택을 만드는 것이다. 생활양식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방과 공동세탁실, 독서실, 작은 텃밭 등등 다양한 공용 공간을 만들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하고 모여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직업이나 취미, 공동의 가치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조합주택'이나 '동호인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은 함께 삶을 계획하고 주택을 짓고 운영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콜렉티브 하우징'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이나 가족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전제로, 일상생활 일부와 생활공간을 공동ㆍ공용화하고 거주자의 합의로 운영되는 공동주택이 건설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구성원들이 여러 그룹에 속해 일상생활에 관련된 많은 일을 자발적으로 처리한다.
예를 들면, 공동식사를 관리하는 그룹과 텃밭을 관리하는 그룹, 공용설비 및 비품을 유지하는 그룹 등 공동체 생활 전반에 걸친 매니지먼트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봉사활동 등 지역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점점 각박해 지는 우리의 주거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대단위 주거개발 대신 비교적 소규모로 이루어져 원주민과의 갈등도 줄이고 지역사회와 연대를 만들 수 있으며 도시적 차원에서 도시재생에 기여 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의 주택은 안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부족한 주택을 확보하려고 가장 기능적으로 모으고 쌓기만 한 결과다. 대규모 개발에 밀려 살던 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도는 삶은 집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아쉬움이 많다.
이제 우리는 과거와 다른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생활환경도 변했고 라이프사이클도 변했다. 1인 가구와 노인가구 등 전통적인 세대구성과는 다르게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집을 짓는 일 뿐만 아니라 모여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공용공간을 만들어 나와 이웃 간에 교류를 증진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도록 계층 간, 세대 간, 개인 간 교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주거유형의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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