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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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교육단상]김영수 대전둔원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13-02-19 14:10
  • 신문게재 2013-02-20 20면
  • 김영수김영수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올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추워!'라며 볼멘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작년 겨울은 어땠지? 작년 겨울에도 이만큼 추웠던가?'라는 생각에 머물면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마흔밖에 안됐는데 벌써 기억력 감퇴? 아마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을 담아두지 않은 탓일 게다. 내 성격 상, 과거보다는 미래에, 미래보다는 현재에 머무르는 까닭인 게다. 하지만 과거 없는 현재가 어디 있던가? 가끔은 과거를 돌아보며 잊었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꺼내봐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학교는 졸업식을 마치고 새학기를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나는 학교행사 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바로 '졸업식'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년의 시간을 되짚어보며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의 한 발을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마음속에 푸른 꿈을 안고 떠나가는 시간! 그런 졸업생들에게 부모와 교사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심어주고, 힘찬 격려의 박수를 쳐 주어야 한다.

이맘때가 되면 그 동안 졸업시킨 제자들이 생각난다. 요즘은 6학년 담임교사를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해서 6학년 담임교사에게 이것저것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변해가는 세태가 서글프기만 하다.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았던 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1년 내내 학생들과 지지고 볶고, 밀고 당기기를 하며 보냈다. 학년 짱 4명이 모두 우리 반이라서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었던 그 해. 그 해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름 인성교육을 해보겠다고 1년 동안 이것저것 많이도 해보고 애를 썼는데 학년 말이 되니, 우리 반 학생들에게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그렇게 1년 동안 노력을 했는데도 우리 반 녀석들은 조금의 변화는커녕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우리 반 녀석들을 원망하며 텅 빈 교실에서 엉엉 소리 내며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내 속을 썩였던 녀석들과의 졸업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주 진한 눈물바다였다. 속 시원하게 후련한 마음으로 떠나보내리라 생각했는데…. 냉정하고 쌀쌀맞은 내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 반 녀석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말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6학년 담임을 하면서 졸업식 때마다 우리 반은 눈물바다였다.

지난 겨울방학, 연수를 받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점심시간에 또 울리는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다 “선생님”하며 웬 여자가 소리를 꽥 지르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A초에서 6학년때 가르치셨던 은경(가명)이에요. 잊으셨어요? 선생님, 너무 보고 싶어요. 저 이제 대학 들어가요. 선생님은 어느 학교에 계세요? 뵙고 싶은데 오늘 만날 수 있어요?” 놀란 나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는 은경이, 그 해 내 속을 썩였던 녀석 중의 한 명이다.

얼마 후엔 그 해 우리 반 회장이었던 00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2013년에 만나기로 한 약속! 잊지 않으셨냐고, 그 날 선생님을 꼭 뵙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기억하고 말고, 그 해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특별했는데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혹시라도 잊을까봐 메모장에 적어두어야 한다. 하지만 메모장에 적어 두지 않아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연'이다.

그 동안 나와 만났던 모든 사람들, 특히 나를 '선생님'이라며 따르던 학생들과의 인연은 꼭 기억해야 한다. 그들과 나누었던 진실된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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