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지금도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면 배피탕을 찾곤 하신다. 배피탕은 “배 아플 때 먹는 끓인 물” 이라는 뜻이 줄어 든 말이라 할 수 있다. 배피탕을 만드는 일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그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재료는 바로 다름 아닌 설탕이었다. 맹물에 설탕을 넣고 팔팔 끓여 낸 것이 바로 배피탕이다.
변변한 소화제가 없던 시절 배피탕은 효과 좋은 명약 가운데 하나였다. 배피탕을 먹으면 배아픈 것이 씻은 듯이 낫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효과 좋은 소화제들이 많이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고봉밥에 김치나 무 짠지면 그만이었다. 고봉밥은 지금의 공기밥으로 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세그릇은 되는 양이었다. 김치와 짠지 등과 함께 배불리 먹고 나면 경우에 따라서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배앓이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럴 때 등장한 것이 배피탕이었다. 그런데 이 배피탕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탕이 귀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설탕이나 소금을 줄여 먹자고 계몽하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설탕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없었다. 설탕을 굳혀 만든 둥근 사탕도 하도 단단하게 만들어 잘 깨물어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녹여 먹으면서 십리는 갈 수 있다고 하여 '십리 사탕'이라 불리기도 했다. 어쩌다 설탕이 구해지면 약용으로 배아픈데 쓰기 위해 아주 귀하게 여겨 함부로 쓰지 않았다. 아마도 설탕의 당분이 고봉밥을 삭히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소화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설탕은 임금님이나 드시던 것이었고 특별한 신하들에게 하사하던 것이었다. 극히 제한된 사람들이 약용으로만 쓰던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탕은 서양에서 중국 당나라를 거쳐 삼국시대에 처음 들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 설탕공장이 생겨 설탕이 일반에 판매된 것은 1920년 경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설탕이 비싸서 설탕의 단맛에 빠져 버리는 것을 아편중독에 비유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설탕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사카린이나 그 성분으로 만든 당원 또는 뉴슈가라고 하는 설탕대용품들이 있었다. 요즘처럼 성인병 유발물질로 인식되기 전에는 단맛을 내는 설탕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지금처럼 설탕을 줄여 먹자는 구호는 상상도 못할 시절이 었었다는 사실을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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